기독교의 발자취를 찾아서 <43>
기독교의 발자취를 찾아서 <43>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1.01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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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중앙대교당

신준수 객원기자

파란만장 역사 숨결과 독립만세 함성 아련히…

▲ 3·1 독립운동의 요람' 천도교 중앙대교당 전경 ◈ '3·1 독립운동의 요람' 천도교 중앙대교당(天道敎 中央大敎堂)

서울시 종로구 경운동 운현궁 맞은편 수운회관 현대식 건물에 '천도교'라는 큼지막한 글씨가 씌어진 현판이 붙어있다. 이 곳 천도교 중앙대교당은 천도교의 총본산 교당이며, 일제 때 항일운동의 거점이기도 했다

서울유형문화재 제36호로 지정

충북 출신이며, 천도교 3대 교주였던 의암 손병희 선생의 주관으로 1918년에 공사가 시작되어 1921년에 완공된 중앙대교당은 전체적으로 독특한 의장수법을 지닌 건물로 서울유형문화재 제36호로 지정됐다.

완공 후 현재까지 6차례에 걸쳐 중수했다. 1956년 3차 중수 때는 한국전쟁 중 소실된 부분을 보수했으며, 1976년 6차 중수 때는 마루바닥을 콘크리트로 교체하고 난방과 전기공사를 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화강석 기초부에 붉은 벽돌을 쌓았으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인 이 건물은 앞면 2층 사무실을 탑 모양의 바로크풍으로 하여 특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당시 서울시내 명동성당, 조선총독부 청사와 함께 서울의 3대 건물의 하나로 꼽혔다.

일반 교회건물 구조와 비슷하면서도 독특한 멋을 지니면서 내·외부에는 배달민족을 상징하는 박달나무 꽃, 무궁화 등이 특이하게 조각되어 있다.

이처럼 고풍스러운 모습의 천도교 중앙대교당이 3·1운동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천도교는 1860년(철종 11년) 경주에서 수운 최제우에 의하여 창시된 한국의 독특한 종교로서 민간신앙에 불교와 도교가 융합되어 성립된 종교이다.

천도교 중앙총부는 1897년 12월 24일 의암 손병희 선생이 해월 최시형 교주로부터 천도교의 대통을 이어받아 1906년 2월 설립됐다.

   
▲ 천도교 중앙대교당 내부 모습

당시 서학(천주교)의 유입은 서민층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이에 대응하여 나타난 것이 동학(東學)이다.

최제우는 1860년 보국안민(輔國安民), 포덕천하(布德天下), 광제창생(廣濟蒼生)을 선포하고 동학을 창시했다. 특히, 손병희 선생은 천도교 제3대 교주로 1905년에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하고 근대적 종교체제로 갖추어 갔다.

그 가운데 1910년 한일합방을 맞은 손병희 선생은 "내가 내 손으로 10년 안에 반드시 내 나라를 되찾겠다. 여러분도 각자 자신의 힘이 아니면 나라를 되찾을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하고 지극히 수도하라"고 결의하고, 천도교는 독립운동을 위한 계획을 준비했다.

종교적 수행을 강화하는 한편, 민족 광복운동을 펼쳐 나가기 시작한 손병희 선생은 천도교 부구총회(部區總會) 결의에 따라 천도교 중앙대교당 건립을 추진했다.

3·1운동 위한 본거지로 이용되기도

전국 교인들에게 호당 10원(현 20만원) 이상 성금을 낼 것을 반포하고, 1918년 착공하여 1921년에 준공한 천도교 대교당은 당시 천도교의 본부인 동시에 3·1운동을 위한 본거지였다.

일제통치하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교인들이 모금한 성금은 약 100만원(약 200억원)으로 그 규모가 엄청났다. 중앙대교당의 총 공사비로 30만원(약 60억원)만 사용하였으며, 대부분은 3·1독립운동 자금으로 사용했다.

이처럼 우리 근대사에서 천도교 중앙대교당이 설립된 것은 곧 3·1운동의 준비과정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앙대교당은 일제 때 정신의 개벽과 사회의 개조를 주장하면서 항일사상을 고취한 종합 월간지 '개벽'을 발간한 신문화운동의 요람이며, 의암 손병희 선생의 셋째 딸인 손용화씨와 결혼한 소파 방정환이 우리나라 최초의 아동문화운동 단체인 색동회와 어린이라는 호칭을 일반화시킨 잡지 '어린이'를 창간한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천도교는 이 곳을 '세계어린이 운동의 발상지'로 기념하고 있다.

광복후에는 해외로 망명했던 백범 김구 선생 등 많은 애국지사들이 귀국해 이곳 대교당에서 환국인사와 더불어 많은 강연회를 열기도 했다.

민중에게 열려 있던 정치집회의 성지

이처럼 파란만장한 과거를 갖고 있는 중앙대교당은 한국의 정치 일번지인 종로를 대표하는 건물답게 이승만의 독립촉성중앙협의회 2차대회, 전국농민조합총연맹 결성대회 등 굵직한 정치집회 역시 많이 열린 곳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3·1절 기념 남북 공동행사를 개최한 것을 비롯해 문화·종교분야의 의미있는 행사들이 이곳에서 이어지고 있으며, 매주 일요일 오전 11시에 서울교구 시일식을 가지며, 천일기념일 등 천도교 8대 기념일에 시일식 및 기념식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창경궁, 인사동과 연계하여 관광코스로도 지명도가 높아 외국인 관광객을 발길이 끓이지 않는다. 요즘 일반 시민대학이나 평생교육, 각 학교의 향토 답사 동아리, 내고장 바로알기 등의 프로그램들이 늘어나면서 우리 전통문화를 관광하려는 일반인들도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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