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업은 남자
아기를 업은 남자
  • 김혜식(수필가)
  • 승인 2015.03.29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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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의 가요따라 세태따라

김혜식(수필가)

햇빛이 봄을 등지고 오는 계절인데 스치는 바람은 꽤나 차다.

혹한이 이어지던 2월 말 서울도심의 어느 골목에서 있었던 일이다. 많은 사람이 빙 둘러 서 있고, 그 중심에 수염이 덥수룩한 40대 중반의 남루한 옷차림의 남자가 엿판을 목에 걸고 엿을 팔고 있었다. 엿판 위엔 흰 가루를 뒤집어쓴 엿가락이 수북이 쌓여 있었고 그의 등에는 아이가 업혀 있었다. 그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허공을 향하여 쉰 목소리로 이렇게 호소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저는 얼마 전에 아내를 잃은 홀아비입니다. 천애 고아이고, 한쪽 팔을 못 쓰는 장애인입니다. 어미 잃은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이렇게 거리로 엿을 팔러 나왔습니다. 우윳값이라도 벌까 하고 엿을 팔고 있으니 도와주십시오”하며 행인들 앞에 엿판을 내밀었다. 그러자 처음엔 앵벌이라고 관심이 없던 행인들이 딱해 보였는지 지폐와 동전을 엿판 위에 던져놓고 지나간다. 한 아주머니는 등에 업혀 곤히 잠든 아이의 두볼을 만지더니 퍼런 만원짜리 5장을 엿판 위에 놓고 돌아선다. 나는 무심코 지갑을 열어 만원짜리 지폐 2장을 꺼내 엿판 위에 올려놓았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는 고맙다는 말을 연발한다. 그런데 등에 업혀 자고 있던 아이가 잠을 깨고 자지러지게 운다. 남자는 엿판을 내려놓고 등에 업힌 아이를 앞으로 돌려 안는다. 보따리 속에서 우유병을 꺼내 꼭지를 아이의 입에 물린다. 그러자 아이는 우유를 단숨에 먹어버린다. 아마도 그 우유는 막 떠 온 얼음물만큼이나 차가울 듯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많은 사람이 너나없이 동정심을 보내는 터이다. 나는 한참 동안 이 모습을 지켜봤다. 내 눈엔 그 아이가 백일도 안된 듯 보였다. 사는 게 무엇인지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순간 칼바람이 아이의 얼굴을 할퀴며 지나간다. 오한을 느끼는가. 포대기에 싸인 채 반은 업히고, 반은 어깨에 매달린 아이가 움찔했다. ‘영화의 장면 같았으면 좋으련만’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양력의 계절로 따지면 초봄이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초봄같지가 않다. 지난밤엔 수온계가 영하 5도로 내려갔단다. 어린아이의 우윳값을 구하기 위하여 엿을 팔던 엿장수 생각이 난다. 아이는 잘 크고 있을까. 학교친구를 만났다. 둘이 마주 않아 커피잔을 앞에 놓고 수다를 떨었다. 홀애비 엿장수 얘기를 했다.

“세상에 불쌍하고 딱한 사람이 어디 그 사람뿐이냐? 다정도 병이란다” 친구는 나보고 지나친 동정심은 죄악이라고까지 했다. 핀잔만 받고 헤어졌다. 정말 그런 것인가? 아니면 그 친구가 인정머리가 없는가. 그렇지 않은 친구였다. 그런 친구가 그렇게 변했다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세상 인심이 참으로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그 친구 만나고 헤어질 때 채연의 `사랑 느낌' 노래가 시내버스 라디오서 흘러나온다. 

-후렴곡(생략) 정말 너를 사랑해/너를 위해 거울을 볼 때/왠지 기분이 들떠/나도 몰래 흥겹게 콧노래 해/다라라라라 다라리라라/네게 예뻐 보이려 화장하고 머릴 만지며/옷은 무얼 입을까 고민할 때도 난 너무 행복해/센스 있는 패션감과 재치유머 넘치는 매력/잘생긴 외몬 아니지만 내 눈엔 니가 제일 멋져(생략)-

더듬더듬 입속으로 노래 가사를 따라 부르려니 ‘우린 생각은 많은데 느낌이 없다’ 이렇듯이 풍자를 통해 부조리에 맞서며 세상을 바꾸려했던 찰리 채플린의 외침이 가슴을 때린다. 이기적이고 물신주의가 팽배한 현대사회에 던지는 경고음이 아니던가. 하루 30분씩 만이라도 타인에 대한 사랑의 느낌을 갖는다면 한결 마음 자락이 윤기를 얻어 세상이 밝아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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