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현실은 더 강한 김영란법을 원한다
우리나라 현실은 더 강한 김영란법을 원한다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15.03.05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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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一筆

국회에서 법이 제정되자마자 수정·보완 논란도 부족해 즉각 헌법소원까지 공론화된 것은 말 그대로 초유의 사태다. 과거 유신헌법 통과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정치적 특정 세력이나 이해 당사자들의 반발이 아닌, 나라 전체가 마치 벌집을 쑤신 듯 호들갑을 떨기는 처음이라는 것이다. 

이번 파문은 부정부패에 대한 우리나라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 꼴이 됐다. 이 법이 의결된 후 가장 먼저 튀어나온 어깃장이 누구는 대상이 되고 누구는 빠졌느냐는 법 적용의 형평성 문제였다. 졸지에 시민단체와 전문직, 그리고 삼성 등 대기업들이 도마위에 올려졌다. 그들도 똑같이 부정부패에 자유로울 수 없다는 주장이 넘쳐났다. 

이같은 공방의 배경은 분명하다. 부정부패라고 한다면 나만 썩은게 아니라 너도 썩고 저들과 그들도 다 곯아 터졌음을 의미한다. 우리사회의 어느 곳도 성하지가 않은 현실에서 정치인이나 공무원만을 특정하여 부정부패방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등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다는 게 어디 가당키나 하겠느냐는 발상인 것이다.

아주 역설적이게도 우리나라에서 김영란법의 절박성은 이번 파문에서 더욱 확실하게 드러났다. 나라 전체가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고 있는 현실에서 만약 이를 바로잡겠다면 이른바 혁명과도 같은 ‘극약처방’이 아니고서는 절대로 불가능함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향후 있게 될 수정·보완은 이 법의 완화보다는 더욱 강화시키는 쪽으로 모아져야 한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국민개조가 아니라 아예 나라 자체를 새로 만든다는 각오로 덤벼들지 않고서는 김영란법도 결국엔 해프닝으로 끝날 지도 모른다. 그 개연성이 면피를 의식한 국회의원들의 모자이크식 입법과정과 지금의 국민적 반발로 드러나고 있다. 

어쨌든 태어나자마자 다시 인큐베이터로 들어갈 처지가 된 김영란법은 우리나라 부정부패의 근간을 굳이 외면하려 했다는 점에서 원초적인 하자를 안고 있다. 왜 부정부패가 나라 전체에 넘쳐나게 됐고, 그 본류(?)는 과연 어디인가를 적시하지 않고선 제 아무리 수정 보완과 헌법소원을 거친다 하더라도 김영란법은 절대로 정상적인 모습으로 재탄생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있어 부패문화의 원흉은 매우 복합적이다. 친일척결 불발, 군사독재, 정경유착의 산업화, 이념갈등 그리고 이로 인한 국가정신의 왜곡이 총체적으로 연계돼 부패적 DNA가 만들어진 것이다. 

문제는 이들 세력이 6.25라는 잔혹한 전쟁을 겪으면서까지도 쉴새없이 국가의 공적영역을 독점해 왔다는 사실이다. 결국 우리나라에서도 부패의 본류는 공직, 공무원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들이 누리는 인허가권과 수사·기소권이 국민들을 두렵게 했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뇌물을 바치고 청탁을 했다. 

김영란법의 공전으로 다시 부각되는 것은 역시 싱가포르다. 싱가포르가 세계 최고의 청렴, 청정국가로 탄생한 계기는 이미 잘 알려진대로 30년을 집권한 리콴유의 부패방지법이 가져다 준 공무원 의식의 혁명이다. 

공무원이 뇌물을 받다 발각되면 본인은 물론 부인과 자식의 모든 재산을 압수했고 3대에 걸쳐 아예 공직을 못 갖도록 했다. 해외출국도 금지시켰다. 국가경제에 아무리 공이 크더라도 부정에 대해선 조금도 선처하지 않았다. 법 앞에선 만인이 평등하다. 지금도 싱가포르에서는 정치인이나 공무원이 하찮은 USB 하나를 선물받더라도 반드시 소속 기관장에게 신고해야 한다. 

예상대로 공직의 부패청산은 일반 국민들에까지 전파돼 아시아에서 가장 깨끗하고 가장 살기좋은 싱가포르를 만들었다. 김영란법이 언론 등 민간영역까지 그 처벌 대상으로 삼은 건 분명 잘못됐다. 공직사회가 깨끗해지면 민간인들은 당연히 따라간다. 세계 최상위의 청렴지수를 자랑하는 덴마크나 뉴질랜드, 핀란드, 스웨덴 등이 다 그렇다. 

민간인을 포함시키면서도 그 처벌 대상이나 법조항을 애매모호하게 설정한 이번 김영란법은 얼핏 17~18세기 절대적 전제주의 국가에서 반짝 기승을 부린 경찰국가를 연상시킨다. 나라가 국민의 모든 것을 강제하는 국가주의 말이다. 대한민국 국회는 이래서 믿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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