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는 이념이 아니다, 그저 스포츠일 뿐이다
골프는 이념이 아니다, 그저 스포츠일 뿐이다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15.02.05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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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의 일필

박근혜 대통령의 골프활성화 발언이 일파만파의 파문을 일으켰다. 연금개혁과 담배값인상 그리고 연말정산, 여기에다 증세 문제로 나라 전체가 뜨거운 상황에서 난데없이 불거진 ‘골프활성화’는 그 타이밍에 있어서도 분명 적절치 않았다. 더군다나 골프장의 세금감면까지 논란이 되고 있으니 일반인들이 사석에서 느꼈을 반감은 안보고도 눈에 선하다.

엄밀히 말하면 골프활성화라는 말은 현실에 맞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골프는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이미 엄청나게 활성화됐다. 남녀노소 세대불문은 물론이고 요즘은 시골마을의 이장님들까지도 골프를 즐긴다. 세계 프로무대에선 ‘한국 독식’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골프에 대한 국가적 배려를 고민한다면 활성화가 아니라 정상화를 외쳐야 옳다. 골프장 난립에 따른 경영난이 점차 현실화되는 문제라든가, 비록 대중화의 영향으로 귀족스포츠라는 오명은 벗어났지만 그 역풍인 골프문화의 타락은 지금 손을 쓰지 않으면 앞으로 사회전반에 큰 생채기를 안길 게 뻔하다. 이것들에 대한 정상화가 전제되지 않는 한 활성화는 결국 공허한 메아리로만 울릴 뿐이다.

골프장에 적용되는 현행의 세제(稅制)는 사실 문제가 크다. 사치성 운동이라는 딱지 때문에 같은 성격의 세금인데도 다른 업종과 비교해 항목에 따라선 무려 열배, 스무배의 세율이 적용된다. 이는 당연히 골프장의 이용료에 반영될 수 밖에 없어 골프를 즐기려면 예전보다는 많이 덜해졌다지만 여전히 높은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그렇더라도 우리나라에서의 유별난 골프관은 마치 이념이나 사상적 차원의 역학관계를 요구받을 정도로 여전히 버겁게 인식되고 있다. 골프는 있는 사람들한테만 해당되고 그러기에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더 나아가 자칫하다간 나라까지 거덜내는 원흉 쯤으로 치부된다. 이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골프를 안 하거나 모르는 사람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이런 말을 들먹인다.

우리처럼 공직자가 골프 한번 잘못 쳤다가 직을 잃거나 아예 패가망신하는 나라도 없다. 국가적으로 무슨 일만 터졌다 하면 가장 먼저 족쇄가 채워지는 게 골프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국민들에게 골프를 해라, 하지 말라 하며 지도하고 으름장을 놓는 경우가 과연 다른 민주국가에서도 있는지 따져 볼 일이다.

아껴 쓴다고 해도 한번 라운딩에 20만원 내외가 소요되는 골프는 당연히 서민들로선 부담스럽다. 하지만 주말 골퍼들의 경우 대개 한달에 한 두번 정도 필드에 나간다는 것을 감안하면 보통사람들이 이 기간동안 음식점에 갖다주고 술집에 바치는 것에 비해 크게 다를 바 없다.

역시 문제는 공직자들의 접대골프와 때를 가리지 않는 광적인 집착이다. 흔히 말하기를 골프의 유일한 단점은 ‘너무 재미있다’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골프는 부모의 상(喪)을 빼고는 지진이 나도 하는 운동(!)이라는 속설도 있다.

공직자가 접대골프에 탐닉하고 나라의 대사를 무시하면서까지 필드에 나간다면 그 사안에 준한 벌칙과 불이익을 주면 그만이다. 공직자들이 본분을 망각하고 간혹 일탈하는 계기는 골프뿐만 아니다. 테니스도 있고 마작도 있고 스키도 있다.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아이에까지 클럽을 쥐어주는 나라에서 유독 골프만이 끊임없이 백안시 당하는 현실이 참으로 아이러니컬하다.

어쨌든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우리나라 골프문화에 하나의 계기를 안기게 될 소지는 충분하다. 바람이 있다면 앞으로는 더 이상 골프를 ‘특별한 것’으로 인식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아주 재미있고, 범인들이 살아가면서 소통과 교감을 경험하는 그저 스포츠로 이해해 달라는 것이다.

부친 박정희는 대단한 골프애호가였다. 그리고 그의 골프는 ‘원 퍼트 OK!’로 지금까지 회자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일단 그린에 공이 올라가면 단 한번의 퍼팅으로 홀을 마쳤다고 한다. 지도자가 짧은거리의 공을 넣으려 고개를 숙이게 되면 품위가 떨어진다는 소신 때문이었다.

말도 안 되는 로컬 룰(local rule ?)이지만 기상천외한 웃음을 주지 않는가. 골프는 이런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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