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립고 가고 싶은 고향될 수 있도록
늘 그립고 가고 싶은 고향될 수 있도록
  • 박병찬 < 칼럼니스트>
  • 승인 2015.02.03 2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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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찬의 세상읽기
박병찬 <안보 칼럼니스트>

연어는 부화 후 어느 정도 자라면 넓은 바다로 나가 살다 3~5년이 되면 되돌아와 산란 후 죽는다. 모천회귀성이 있어 고향으로 돌아온다. 사람 또한 유사한 듯하다. 대부분 노년이 되면 귀향을 꿈꾸고 죽어서는 고향에 묻히고 싶어 한다. 끌리는 따뜻한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변하는 듯하다. 가끔 찾는 고향의 모습이 옛날 같지 않다. 외지인들이 들어와 살고 많은 전답이 외지인 소유가 되면서 더욱 그렇다. 하여 이제 고향시골도 포근했던 옛 분위기를 좀처럼 느끼기가 힘들다. 은퇴 후 귀농은 물론 죽어서도 가기가 힘든 상황이 되고 있다.

얼마 전 지인 부친상에 갔었다. 장지가 인근 선산이었다. 그런데 발인 후 장지로 가지 않고 화장장으로 갔다. 이유인즉 선산주변 주민들이 영구차가 마을 앞을 지나는 것을 거부해 화장 후 가족묘지에 잠시 모셨다가 옮기기로 했다는 것이다. 결국 화장 후 마을 주민을 피해 뒷산 골짜기를 경유 선산 가족묘지에 임시로 모셨다.

유해를 모신 후 주변에서 식사를 했다. 얼마 후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4~50대 남성이 다가와 상주에게 뭔가를 이야기 하고 있었다. 분위기가 심각해 보여 가까이 가서 들어 봤더니 돈을 요구하고 있었다. 유해가 마을로 들어와 ‘주민들의 불만이 많다’며 돈을 내라는 것이었다. 거부하면 신고하겠다며 협박까지 했다.

상주는 부친의 마지막 가는 길에 혹시 누(累)가 되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그렇게 하자는 의견이었으나 친인척들은 대노하며 반대했다. ‘마을 주민들의 반대 때문에 망자의 유언(埋葬)에도 불구하고 화장을 해서 마을을 피해 뒷산 골짜기로 이동 가족묘지에 임시로 모셨는데 돈까지 요구하는 것은 너무하는 것 아니냐’며 난리였다. 돈을 요구하던 사람은 그냥 돌아가야만 했다.

잠시 후 상주는 그래도 그게 아니라며 음식과 과일을 준비해서 마을 회관을 찾아가 주민들에게 전후사정얘기를 했더니 조금 전 이장이라며 돈을 요구하던 사람의 태도와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는 것이다. 돈을 요구했다는 것이 이해가 안갈 정도였다고 했다. 이것이 본래의 우리 시골 인심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고향을 찾는 이들에게 금품을 요구하거나 텃세를 자행하는 현상은 증가하는 추세다. 몇몇 마을의 경우 일부 젊은이들이 운구차(상여)가 마을 앞이나 주변 논밭을 통과하는 대가로 돈을 요구하는 것이 당연시 되고 있다. 속된 말로 통행세를 받는다. 문제는 ‘받은 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이 모르는 상태에서 특정인의 쌈지 돈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지역 일부 사람이 문제라는 얘기일 것이다. 위법성 여부를 따져봐야 할 일이 아닌가싶다.

이뿐만이 아니다. 고향을 찾는 귀향인들에게 목적이 불분명한 발전기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성공한 귀향인이라면 고향에 적법한 기부는 할 수 있다고 본다. 자발적인 기부라면 말이다. 하지만 생계가 막막해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어렵게 살다가 귀향한 사람들에게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우리 지역만이라도 죽어서나 살아서나 편안한 마음으로 찾을 수 있는 ‘고향 충청도’가 됐으면 한다. 무엇을 요구하는 고향이 아니라 최소한 따듯한 정이라도 듬뿍 줄 수 있는 고향이 됐으면 한다. 조만간 다가 올 설 명절부터라도 당장 그랬으면 한다. 이 지역에서 태어난 고향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늘 그리워하고 함께 하고 싶고 마지막에 묻히고 싶은 고향이 될 수 있도록. 죽을 때 고향을 찾는 연어처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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