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과거행적 반성이 첫 진보교육감 탄생시켰다
부끄러운 과거행적 반성이 첫 진보교육감 탄생시켰다
  • 김금란 기자
  • 승인 2014.06.16 18: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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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우 충북교육감 당선자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 유년시절

상주 출생… 작가 꿈꾸던 학생

농사 대신 교편 선택 청주 行

△ 교사운동

軍생활 반성… 교육민주화 앞장

1989~1994년 해직교사 생활

△ 최초 진보교육감

복직후 2006년 교단 떠나

교육위원·시민단체 등 활동

2010년 교육발전소 설립

'통합교육감' 목표… 새달 취임

충북 최초 진보교육감이 된 김병우 당선자(57). 2010년 충북교육감 선거에서 34.19%의 득표율로 차점 낙선한 그는 4년간 절치부심의 시간을 거쳐 올해 6·4 지방선거에서 44.50%의 득표율로 충북교육감에 당선됐다.

◇ 작가를 꿈꾸던 유년시절

김병우 당선자는 1957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다. 방앗간과 양계장을 운영하던 김희한·장공리(85) 부부의 장남으로 태어난 김 당선자의 유년시절은 부족함이 없었다. 37세에 얻은 귀한 장남을 그의 부모는 더 큰물에서 놀라며 김천중학교로 유학 보냈다.

글쓰기를 좋아했던 김 당선자의 유년시절 꿈은 작가였다. 서라벌예대 입학을 목표로 학원 잡지에 투고도 했다. 하지만, 전국 백일장에서 큰 상을 받지 못하자 작가의 꿈을 접었다. 이후 그는 학과 공부에 매달렸다. 극상위 성적으로 공부 좀 했던 학생이라고 말하는 김 당선자는 김천중학교는 360명 중 9등, 김천고는 480명 중 12등으로 각각 입학했다.

중학교 시절 넉넉했던 가세는 아버지의 연이은 사업 실패로 기울었다. 부친은 김 당선자에게 “쌀 한 톨로 200톨을 만들 수 있는 생산적인 일은 농사밖에 없다”며 농잠전문학교(상주전문대 전신) 진학을 권했다. 전문대 졸업후 서울대 농과대학 특례입학이 가능했던 시절 아버지는 아들을 서울로 보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김 당선자는 농사가 죽기보다 싫었다. 그래서 난생처음 아버지에게 대들었다. “농사를 손바닥으로 짓습니까”라는 말을 들은 부친은 이후 김 당선자의 진로에 대해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글도 쓰고, 안정된 직장을 갖고 싶어 충북대학교 국어교육과에 진학했다. 19살 때 고향을 떠나 청주에 자리잡은 지 올해로 38년째다. 대학 졸업 후 충북에서 26년간 교편을 잡았던 그는 초등학교 1학년 2학기 담임인 고 이오덕 교감을 잊지 못한다.

이오덕 교감은 그가 교사운동을 하는 데 정신적 지주였다. “잠(재미) 있게 놀아라”라는 말을 늘 했던 은사는, 글은 솔직한 삶을 토해내 진실하게 쓰는 것이지 짓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은사의 저서 ‘일하는 아이들’에는 60~70년대 제자들의 습작이 수록돼 있다. 하지만 김 당선자의 글은 빠졌다. 김 당선자는 어린이답지 않은 글을 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오죽하면 은사는 1학년 통지표에 ‘어린이다운 생기가 부족하다’고 적었다.

◇ 과거행적 반성하고 싶어 뛰어든 교사운동

안정된 교사의 길을 뒤로하고 김 당선자는 1980년대 교사운동에 뛰어들었다. 부끄러운 자신의 과거 행적에 대한 반성 때문이었다.

그는 유신 말기 학도호국단 간부였던 스펙을 갖고 광주 31사단에서 광주를 진압하고 집권한 신군부에 충성하는 군생활을 했다. 새 시대, 새 지도자의 이미지 부각을 위한 군인정신교육 교본을 만드는 정훈 사병으로 일했다. 군 제대 후 광주사태의 진실과 광주민주화 운동의 실체를 알았다. 충성을 다한 군생활이 역사적 죄임을 깨달았다.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어 달려온 행적이 부끄러웠다. 이때 교육민주화 운동을 접했고, 교육관이 바뀌었다. 교육부에 맞서 전교조 합법화에 앞장섰다. 그 결과 1989년 9월부터 1994년 3월 10일까지 해직교사로 살았다.

거리교사로 살면서 그는 사회의 멸시와 수모를 감당해야 했다. 집회를 막기 위해 동원된 경찰들은 거리교사 1500여명을 차에 태워 벽제 화장장과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에 내려놓았다.

1990년 9월 김 당선자의 굴비 사건은 교육계 일대 사건 중 하나다. 해직교사 지원 사업으로 판매한 굴비를 구매한 직원에 대해 도교육청의 뒷조사가 시작되자 무더기 취소사태가 벌어졌다. 김 당선자는 굴비 다섯 두릅을 메고 도교육청 현관 바닥에 던진 뒤 소리내 울었다. 굴비 냄새가 온몸에서 진동했지만 해직교사의 설움보다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이후 도교육청의 뒷조사는 중단됐지만 남은 굴비를 김 당선자는 몇 달 동안 먹었다.

◇ 충북 최초 진보교육감 당선

1994년 복직했지만 2006년 청주 남중을 끝으로 교단을 떠났다. 이후 충북교육의 방향을 제시하고 싶어 충북교육위원회 교육위원(2006~2010)으로 활동했다. 교육 주체인 학생, 학부모들의 진솔한 얘기를 듣고 싶어 시민사회단체에 몸담았다. 2010년 교육감 선거에서 낙선 후 그는 충북교육발전소를 설립, 충북교육 정책을 수립했다. ‘아이들이 웃으면 세상이 행복합니다’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출마한 6·4선거에서 충북교육감에 당선됐다.

상주에 사는 팔순 노모는 그에게“장하다 내 아들”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김 당선자는 7월1일부터 시작되는 4년 임기 동안 사과 속의 씨앗 세기에 급급했던 경쟁과 실적 위주의 교육에서 탈피해 씨앗 속에 든 무한한 가능성의 사과를 그리고 싶다고 말한다.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통합교육감, 학생과 학부모에게 행복을 주는 행복교육감으로 살고 싶다는 김 당선자의 꿈이 이뤄지길 기대해 본다.

◈ "고입선발고사 폐지, 내년 계획수립 반영"

김병우 당선자에 듣는다

내신만으로 고교 신입생 선발

교육활동 중심 혁신학교 도입

전교조 교사에 에너지 발산 기회

충북 최초 진보교육감이 된 김병우 당선자는 교육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오늘의 배움이 즐거워 내일이 기다려지는 교육’을 만들기 위해 행복교육감으로 살겠다는 김 당선자를 통해 충북교육에 대한 구상을 들어봤다.

-고입선발고사 폐지를 핵심 공약으로 밝혔다. 추진 방법은.

△고입선발고사 폐지는 4년 전 선거 때부터 나의 주요 공약이었다. 고입 선발고사가 학생선발과 학력제고라는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부활했던 것인데, 그 두 가지 모두 기능을 잃어버렸다. 게다가 정상적인 학교 교육과정까지 파행으로 몰아가 나는 이것들을 정상화하기 위해 폐지하겠다는 것이다.

우선 2014년도 고입선발시험은 계획대로 시행할 수밖에 없지만, 이후 내년도 고입전형 계획 수립 시 반영해 내신성적만으로 고등학교 신입생을 선발토록 하겠다.

-4년 전 진보교육감들이 추진한 혁신학교가 충북에도 도입될 것으로 안다. 문제는 없는가.

△혁신학교는 교육활동이 중심이 되는 학교이며, 자율성을 바탕으로 참여와 협력의 교육이 이뤄지는 학교다. 특히 일반 행정 업무가 아니라 교육활동 중심으로 학교운영이 재구조화되고, 구성원의 능동적 참여와 소통이 중시된다. 즉‘신나는 학교, 재미있는 공부’가 가능한 학교다. 주입식 암기식 교육으로는 현재 시행되고 있는 대학입시체제에도 맞지 않고 미래형 학력을 기르지 못한다. 학생의 65%가 교과 성적 외에 동아리 활동, 봉사활동 등 다양한 교내외 활동이 기록된 학생부 중심의 수시전형을 통해 선발된다. 이런 입시체제에서는 학생들을 교실에 가둬두고 문제집만 풀어서는 대학입시에서 실패한다.

혁신학교의 성공모델인 경기의 흥덕고는 학습 동기가 낮고 문제행동을 일삼는 학생들이 많은 학교였다. 하지만, 혁신학교로 지정되고 교직원들의 자발적 헌신을 통해 교육적 성공을 이뤘다. 학교폭력 등 문제행동은 사라지고 학생인권존중 문화가 정착됐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학생들의 학습력과 만족도가 크게 향상돼 대학입시에서도 성과를 거뒀다.

-전교조 출신 교육감 당선으로 전교조 출신 교사들을 중용할 것이라고 하는데.

△20여 년 전 전교조 합법화 운동에 참여하면서 정부로부터 시체나 쓰레기 취급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니 전교조 교사들에게 독소와 같은 부정에너지를 갖게 했다. 그동안 전교조 교사들에게 주어지지 못해 발휘할 수 없었던 긍정에너지를 발산할 공간과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 이들뿐 아니라 모든 교육주체에게도 기회의 문은 열려 있다. 교사와 학생들에게 학교가 더이상 탈출하고 싶은 공간이 아니라 떠나고 싶지 않은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교육감 임기 4년, 어떻게 보내고 싶은가.

△길을 걷는데 아이들이 교육감 아저씨다 하면서 달려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길에서 학부모들이 편하게 인사하고 자기 아이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면 한다. 아이들, 학부모들이 즐거워지는 그런 상상이 현실이 되도록 노력하며 임기를 수행하고 싶다.

<사진 배훈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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