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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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9.29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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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밥상
어느 날 내가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10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부엌에서 달그락 달그락 밥상을 차리고 계신다. 10년 전보다 20년은 더 젊어진 어머니는 콩나물 무치던 손으로 이제는 늙어버린 내 손을 밥상 앞으로 잡아끈다. 왜 이렇게 늦은 거냐, 밖에서 또 놀다 온 거냐 젊은 어머니의 잔소리를 참아내며 늙은 내가 밥을 먹는다. 어머닌 참, 내가 아직도 어린애인줄 아세요 그럴 때마다 이놈 자식이, 어머니의 싱싱한 손이 낡은 내 엉덩이를 후려친다 너는 커서 대체 뭐가 되려고 그러냐 어머니, 난 이미 어머니만큼 살았고, 인생의 절반을 시인으로 살았으면 됐지, 뭐가 또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도 이놈이, 밥 흘리지 말랬더니, 그거 다 저승 가서 먹어야 해! 어느 날부턴가 다 낡은 나에게 싱싱한 어머니는 죽지도 않는다.

시집 '안녕, 후두득 씨'(실천문학사) 중에서

<김병기시인의 감상노트>

   
이미 불귀의 손님으로 가신 젊은 어머니가 달그락달그락 밥상을 차리고 있다. 밥 못 먹고 살까봐 보자마자 손을 끌고 밥상에 앉힌다. "얘야, 놀지만 말고 밥 좀 먹고 살거라" 하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정겨운 귀울음이다. 이제 어머니의 나이가 되어 늙어버린 시간의 밥상에서 문득 생각하니 순간이 다 환상이다. 그래도 어머니께서는 아직도 밥을 물리지 못하고 기다리니 자식은 무엇으로 흐린 저녁을 견딜 것인가. 밥 흘리면 벌 받는다. 그 밥이 누군가의 순한 목숨인 줄 알거라. 저승 가면, 그 흘린 밥으로 인해 평생을 터진 배 꿰매며 산다. 누구에게나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내 몸의 반이 어머니라지만, 알고 보면 내 몸이 어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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