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보무사 <180>
궁보무사 <180>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9.27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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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놈들 봐라. 아직도 반응이 없어. 나를 무시하겠다 이건가'
3. 그는 뇌물을 좋아했다

그러나 내덕은 지금 자기 부하들이 이런 엉뚱한 방향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는 줄도 모르고 여전히 야무진 꿈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후후후. 내가 대강 이런 정도로 쪼아놨으니 어쩔 수없이 놈들이 털가죽 몇 개를 더 가지고 나를 찾아오겠지. 그러면 나는 못 이기는 척하며 슬쩍 받아둬야지. 물론 겉으로는 '아, 뭘 이런 걸 다 가져오나 내가 뇌물이나 받아 처먹는 사람처럼 보이나 응' 하고 화를 내는 시늉을 하면서 말이야. 아, 어쨌거나 기분이 참 좋다. 내가 받은 이 곰가죽은 보아하니 값이 제법 나가겠는걸. 이건 우리 마누라한테 갖다 주고, 조금 있다가 부하 놈들이 알아서 갖다 바치는 털가죽들로는 시장에 내다 팔아서 그걸로 원 없이 실컷 좋은 술을 사마시고 예쁜 계집 엉덩짝을 두들기며 신나게 놀아봐야지. 요 맛에 사람 사는 거 아니겠어 으흐흐흐.'

사실 내덕은 한벌성 내에서 몹시 짜기로 소문이 난 사람이었다.

그는 저녁 끼니때가 되면 자기 딴엔 집안의 양곡을 절약해보고자 이곳저곳 아는 사람들의 집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밥을 얻어먹곤 하였다. 그는 장가든지 얼마 안되는 친구의 집이건, 그의 부모가 몸이 아파 누워있는 친구의 집이건 간에 밥을 얻어먹을 수 있을 만한 곳이라면 전혀 가리지 않았다. 따라서 피해를 가장 많이 입는 사람들은 자연히 만만한 그의 부하들일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어떤 부하의 집에는 내덕이 순번을 잘못 착각하여 연거푸 두세 번씩 찾아간 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는 한벌성 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집안 경조사(慶弔事)에 대해 환히 꿰뚫고 있었는데, 찾아가서 푸짐한 음식을 대접 받을 때에는 미리 준비해 간 가죽 주머니 안에 자기가 남긴 음식들을 싹싹 쓸어 담곤 하였다. 물론 자기 집에서 기르는 개한테 갖다 준다는 명목이었지만 일부러 맛이 있는 고기들만 쏙쏙 골라 담는 걸 보면 집으로 가지고 가서 끼니때마다 먹으려는 수작임이 거의 분명해 보였다. 그런데 매우 신기한 것은 이렇게까지 그가 심한 구두쇠 짓을 하였으니 재물이라도 제법 모으지 않았을까 싶지만, 그건 아니었다. 왜냐하면 내덕은 이렇게까지 치사하게 모은 돈을 가지고 어느 날 갑자기 술집을 찾아가서 술을 진탕 퍼마시거나 예쁜 계집과 놀아나는데 몽땅다 탕진해 버리곤 하였기 때문이었다. 만약에 내덕이 한벌성의 실력자 율량 대신과 이웃집에 살며 옛날부터 호형호제(呼兄呼弟)하는 사이가 아니었더라면 관직에서 진작 쫓겨나고도 남을 만한 인물이었다.

어쨌든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난 이들은 또다시 한벌성을 향해 출발하였다.

내덕은 걸어가면서 은근히 뭔가를 기대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뇌물을 안주기로 이미 합의를 했으니 그의 부하 어느 누구도 그에게 다가와 아부를 할리 없었다.

아니, 그의 부하들은 그에게 다가오려고 하지 않을 뿐더러 심지어 어쩌다 마주치는 시선까지도 애써 고개를 돌려 외면해버리곤 하였다.

'어라 요놈들 봐라 아직도 반응이 없어 으흥!~ 나를 무시하겠다 이건가 괘씸한 놈들! 내 덕에 큰 횡재를 한 줄도 모르고. 어디 두고 보라지. 나중에 수틀리면 내가 무슨 핑계를 잡아서라도 네놈들을 박박 기게 만들어 놓고 말 터이니. 아! 그나저나 이걸 어쩐다지 이제 성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사람들의 눈이 있고해서 내가 그런 걸 노골적으로 받아 챙길 수가 없게 되는데. 아! 이럴 줄 알았더라면 아까 수동이 내게 가져온 담비 가죽이라도 확실하게 받아 챙길 걸 그랬나 일단 주는 건 확실하게 받아놓고 나서 그 다음을 생각하던지 말든지 해야 하는 게 원칙인데. 확실히 실수였어. 다음부터 나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 따위를 절대로 하지 말아야지. 으흠흠.'

한벌성에 점점 가까이 다가갈수록 내덕은 내심 불안하고 초조스러운지 온몸을 들썩거렸다.

그러나 그 반면, 그의 부하들과 동료 사천의 얼굴 위에는 여느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환히 밝은 미소가 이른 봄날 아지랑이처럼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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