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사 박문수의 간찰
어사 박문수의 간찰
  • 한명철 <인형조각가>
  • 승인 2014.03.05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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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조각가 한명철의 손바닥 동화-길우물 이야기
한명철 <인형조각가>

어릴 때 “암행어사 박문수” 만화를 꽤 흥미진진하게 본 기억이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마패와 함께 암행어사에 대한 묘한 향수 같은 게 남아 있지요. 영조 때 소론이였던 그는 “ 이인좌의 난”이 발생하였을 때 순무사 오명항의 종사관으로 난을 평정하는데 많은 공을 쌓아 공신이 됩니다.

경상도 관찰사와 어영대장을 했고 특히 호조판서 재직 시 역대 어느 관료보다 일을 잘 처리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내의원제조로 왕세손(사도세자)이 죽자 제주에 귀양을 같으나 이듬해 방면 되었음은 그의 실력을 아끼는 영조의 탕평책에 기여한 까닭이기도 합니다.

국정 개혁 논의와 군정, 세정에 밝아 중요한 몫을 담당하였지요. 영조 앞에서 올곧은 소리를 할 수 있는 중신이었습니다.

이 간찰은 전라도 함평군수의 보고를 받고 나서 해당 결재를 바란다는 공문 성격의 글과 가지고 간 이승지의 집안에 자료를 살펴보고 의견을 달라는 내용이 덧붙여져 있습니다. 안성 칠장사는 임꺽정의 스승 병해대사가 있던 절로 유명한데 그곳 나한전은 입시 철 기도처로 유명합니다. 박문수가 나한전에서 기도드리고 장원급제를 했다는 이유 때문으로 공양물엔 초코파이나 과자가 많습니다. 박문수가 조청 유과를 공양한 까닭인데 재미있는 일화입니다. 1794년 영조에게 주청하여 “탁지정례”를 출판한 것은 궁과 중앙부처의 재정용도를 규정한 책으로 재정체계를 바로잡고 용도의 절감을 꾀하기 위하여 간행된 것입니다.

그의 증조부인 박심도 암행어사로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준 것은 이 집안의 전통처럼 느껴집니다. 노론인 우암 송시열과 소론인 윤증으로부터 동시에 칭송을 받은 것이 그것을 말해줍니다. 천안 목천 은석산에 그의 묘소가 있습니다.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말을 그가 증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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