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엄습한 ‘중앙의 힘’
천안 엄습한 ‘중앙의 힘’
  • 조한필 기자
  • 승인 2014.03.02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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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조한필 부국장 <천안·아산>

중앙과 지방,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지방자치시대가 열린지 2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여전히 중앙은 막강하다. 지방은 아직 중앙이 내려주는 국비에 의존해 대형 도시기반시설을 갖춘다. 항상 중앙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 요즘 천안에서 이런 ‘중앙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지난주 중앙서 내려온 지방선거 출마예정자가 시청 브리핑실을 찾았다. 한동안 소문만 무성했던 박찬우 전 안전행정부 차관이 퇴임 이틀만에 출마선언을 하러 온 것이다.

기자도 많이 모였지만 지지자도 많이 왔다. 박 전 차관이 아직 입당 전인데 새누리당 시의원 여럿이 그의 뒤에 섰다. 재력가로 알려진 퇴직한 시 직원 모습도 보였다. 브리핑실이 모두 수용하지 못할 정도였다.

박 전 차관은 퇴임할 때부터 중앙의 힘을 보였다. 지난달 24일 사표를 제출하자 중앙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선거 출마를 위한 현직차관 첫 사표’라는 뉴스 의미(News Value)까지 붙여가며 알렸다. 출마를 위해 사표 쓸 차관들이 많은 것도 아닌데…. 많은 매체가 다양한 행정부서 경력과 대전·논산시 부단체장 경력을 부각시켰다.

그가 고향 천안서 나온 초등학교, 중학교 이름까지 밝힌데도 있다. 청와대의 모 수석비서관과 절친이라고도 알렸다. 한 언론은 퇴임식 사진과 퇴임사까지 소개하는 특혜를 서슴지 않았다. 그가 공직생활 동안 언론과 도타운 관계였음을 알 수 있었다.

그가 퇴임하던 날, 충남도와 천안시에 안행부 ‘선물’이 내려졌다. 안행부의 ‘정부 3.0’ 실적 평가에서 국무총리(충남도), 안행부 장관(천안시) 표창을 받았다. 충남 15개 시·군 중 천안시가 유일했다. 박 전 차관 어깨가 으쓱할 만한 일이었다. 기자들 사이에서 “안행부의 전관예우 아니냐”는 농담이 오갔다.

정부 3.0은 박근혜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국정과제로 투명한 정부, 유능한 정부, 맞춤형 서비스 정부를 지향하고 있다. 박 전 차관은 이 사업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그는 출마선언문에서 중앙의 힘을 은근히 과시했다. “천안을 역동적인 창조문화도시로 건설하기 위해선 비전과 전략을 실현할 수 있는 행정역량과 막대한 예산 확보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폭넓게 유지해 온 중앙정부와의 인맥을 활용해 천안 발전을 크게 앞당기겠습니다.”

새누리당 시장 후보 자리를 놓고 격돌할 다른 출마자들이 긴장했다. 중앙당은 상향식 공천을 천명하면서도 전략공천이 있을 수 있음을 밝혔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경선 후보들은 전략공천을 경계한다. 출사표를 던진 전·현직 시의회 의장은 최근 회동에서 공정한 경선이 이뤄지도록 함께 노력하기로 다짐했다. 최민기 의장은 “공정한 룰에 입각한 경선에는 참여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독자적 행보를 불사하겠다”고 탈당 배수진을 쳤다.

수십 년간 고향에 살면서 의정 활동을 통해 ‘지역’ 발전을 줄곧 고민했던 사람. 중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30년여간 ‘중앙’으로 살다가 돌아온 사람. 출마선언문부터 차이가 났다. 한쪽은 구체성이 묻어나고 한쪽은 추상적 선언만이 있었다.

양적 성장이 거듭된 천안, 이젠 질적 성장이 필요하다. 지역에 오래 산 사람만이 이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중앙의 힘으로 큰 일을 벌이는 것도 좋지만 시민들의 가려운 곳을 잘 긁어주는 게 더 중요하다.

그러나 민심은 흔들리는 존재다. ‘중앙’은 힘이 있음을 공언하며 대대적으로 알릴 태세다. 이 글이 그걸 도와주는 꼴이 될까 쓰는 내내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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