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성의 신화속의 날씨 <37>
반기성의 신화속의 날씨 <37>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9.22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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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을 다스리는 신모(神母)

나라는 달라도

              비를 기원하는 마음은 같다.

   


몇 해 전, 말레이시아 정부는 가뭄 피해가 심각해지자 주술사를 고용해 기우제를 지냈다. 기우제를 주관하게 된 주술사는 자신만만해 하며 큰 소리로 하늘에 비를 불렀으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고 한다. 과학문명이 발달한 현대에도 가뭄을 극복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기우제를 지내려 하는데, 옛 시대에 살던 사람들은 기우제(祈雨祭)에 얼마나 많은 기대를 걸었을까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가장 무서운 기상재해가 가뭄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가뭄이 들면 그만큼 피해가 컸기에 가뭄을 극복하려는 기우(祈雨) 방식이 문화권마다 다양하게 전승되어 왔다. 우리나라에도 가뭄을 주관하는 신모(神母) 이야기가 영남지방에 전해내려 온다.

경상북도 경주에서 남서쪽으로 50여리, 울산과의 경계에 치술령이 있다. 치술령은 신라 충신 박제상과 그의 부인과의 애절한 사랑이 깃들어 있는 산이다. 박제상은 신라 왕자를 구하기 위해 일본에 갔다가 왕자는 구하고 자신은 죽었다. 박제상의 아내는 세 딸을 데리고 하루도 빠짐없이 치술령에 올라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렸다. 삼국유사에는 박제상의 아내가 죽어서 치술신모가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치술령 꼭대기에는 망부(望夫)의 전설을 간직한 망부석이 지금도 일본을 바라보고 있다. 치술신모는 치술령의 산신을 이르는 이름으로, 경주 선도산(仙挑山)의 서술성모(西述聖母), 영일(迎日)의 운제산성모(雲梯山聖母) 등과 비슷하다. 치술령에는 기우단이 있어 가뭄이 들면 치술신모에게 기우제를 올렸는데, 가뭄을 주관하는 신모의 영향 때문인지 지금도 영험이 있다고 한다.

비가 내리기 위해서는 구름이 먼저 들어오는 것이 순리일 터, 가뭄이 들면 마을 사람들은 치술령에 비구름 걸리기만을 기다렸다. 치술령에 구름 걸리기를 아무리 기다려도 구름 한 점 들지않고 가뭄이 더 심해지면 치술령에 올라가 기우제를 지냈다.

"마을 사람들아, 치술령이 울고 망부석이 울어요. 신모님이 잠에서 깨어나 우신답니다."

치술령에 검은 비구름이 걸리면 사람들은 꽹과리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이들은 신모가 '울어야' 비가 온다고 믿었다. 이와 반대로 '치술령이 웃는다'거나 '신모가 꿈을 꾼다'고 하면 가뭄이 든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 지방 사람들은 '운다'는 말이 나올 때 기분 좋아하고, '웃는다'는 말에 기분이 상해하며 화를 낸다고 한다. 대단한 역설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올리는 기우의 방식은 간단하다. 신모가 잠들었거나, 남신(男神)과 사랑을 나누고 있으면 신모가 울지 않아 가뭄이 내린다 하여, 신모를 울리기 위해 요란스레 기우제를 지내는 것이다. 신모가 울지 않는 원인을 무당에게 물어본 후 신모가 잠들어 있다고 하면 온 마을 사람들이 꽹과리며 놋대야, 솥뚜껑을 들고 치술령에 올라가 두들겨 대고 고함을 지르며 춤을 춘다. 소란을 피워 신모의 잠을 깨우려는 것이다.

만일 신모가 남신과 사랑에 빠져 우는 것을 잊고 있다면, 신모와 사랑을 나누고 있는 남신을 미인계로 유인하는 방법을 쓴다. 젊은 무녀의 머리에 버들가지로 만든 푸른 고깔을 씌우고 음란한 춤을 추게 하여 신모에게서 남신을 떼어놓으려고 한다. 젊은 무녀는 치마를 올렸다, 내렸다, 저고리 자락을 풀듯, 말듯 젖가슴을 슬쩍슬쩍 들추며 음탕한 춤을 추어 신모와 밀회를 나누고 있는 남신을 유혹하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주술방법으로 기우제를 지내는 나라들이 더 있다. 태국의 기우제도 비의 신을 깨우기 위해 시끄럽게 소란을 피우는 방법을 사용한다. 이들은 사나운 코끼리를 사람 형상의 커다란 인형이 만들어진 광장으로 끌고 간다. 코끼리가 인형을 짓밟는 동안 폭죽을 터뜨리고 타악기를 두드리는 등 고막을 찢을 듯한 시끄러운 기우제 의식을 진행한다. 네팔 왕국에서는 가뭄이 들면 부족의 여인들이 알몸으로 논밭에 나가 일을 하며 비를 기원한다. 미국의 한 지방에 내려오는 기우제는 알몸의 소녀들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꽃과 풀로 장식을 한 다음 춤을 추면서 마을을 한 바퀴 도는데, 소녀들이 방문하는 집에서는 이들에게 물을 뿌리며 비를 기원하는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폭죽을 터뜨리며 소란을 피우는 것이나, 여자의 벗은 몸을 이용하여 남신을 유혹하는 방법은 치술령의 기우제와 매우 흡사하다.

치술령의 신모가 두 가지 방법으로도 울지 않으면, 시집 안 간 처녀 세 명을 치술령에 올려 보내 곡(哭)을 하게 했다고 한다. 과부의 딸일수록 기우의 효험이 크다고 믿었는데, 이는 박제상의 아내였던 신모가 치술령에서 남편을 기다릴 때 세 명의 딸과 함께 했던 것에서 유래된 듯하다. 과부가 된 신모 자신과, 처녀의 몸으로 죽은 세 딸을 생각하면 절로 울음이 나올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이다. 요즘에는 짚으로 만든 꼭두각시 세 개를 치술령의 나무에 걸어 두는 것으로 간소화되었다고 한다.

최근 각 나라마다 가뭄을 해결하기 위한 인공강우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러시아나 중국, 이스라엘, 호주에서 인공강우 기술을 적극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과학적인 인공강우 연구에 더 많은 관심과 투자를 기울여야 할 때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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