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둘, 왜 그런가 하면
마흔둘, 왜 그런가 하면
  • 김태종 <삶터교회목사·생태교육연구소 터 소장>
  • 승인 2014.02.19 20: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태종의 함께 읽는 도덕경-땅에서 듣는 하늘의 노래
김태종 <삶터교회목사·생태교육연구소 터 소장>

上士(상사)는 聞道(문도)에 勤而行之(근이행지)하고 中士(중사)는 聞道(문도)에 若存若亡(약존약망)하며 下士(하사)는 聞道(문도)에 大笑之(대소지)니 不笑(불소)면 不足以爲道(부족이위도)니라.

故(고)로 建言(건언)에 有之(유지)니 明道(명도)는 若昧(약매)하고 進道(진도)는 若退(약퇴)하며 夷道(이도)는 若 (약뢰)하고 上德(상덕)은 若谷(약곡)이요 大白(대백)은 若辱(약욕)이요 廣德(광덕)은 若不足(약부족)이요 建德(건덕)은 若偸(약투)하고 質眞은 若 (약투)요 大方(대방)은 無隅(무우)하고 大器(대기)는 晩成(만성)이며 大音(대음)은 希聲(희성)이요 大象(대상)은 無形(무형)이요 道隱(도은)이면 無名(무명)이라.

夫唯(부유)로 道(도)는 善貸(선대)나 且成(차성)이니라.

 

- 싹수있는 사람은 도를 들으면 부지런히 따르고 보통인 사람은 도를 들으면 긴가민가하며 어리석은 사람은 도를 들으면 크게 비웃으니 그들이 비웃지 않으면 도라고 하기에는 모자란 것이다./ 그러므로 옛 말에 있는 것처럼 틀림없는 도는 흐릿해 보이고 나아가는 도는 물러남처럼 보이며 제대로 된 도는 어그러진 것처럼 보이며 뛰어난 덕은 허술해 보이고 참으로 깨끗한 것은 얼룩져 보이고 넉넉한 덕은 모자란 것처럼 보이며 굳센 덕은 어색해 보이며 그윽한 참됨은 어그러져 보이며 제대로 각을 낸 것에는 구석이 보이지 않고 큰 그릇은 이루어짐에 오래 걸리고, 제대로 된 소리는 잘 안 들리며, 모양이 제대로 난 것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고, 도가 숨어있을 때에는 이름을 갖추지 않는다./ 무릇 도가 하는 것은 늘 내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끝내는 다 이룬다.

 

‘상사’, ‘중사’, ‘하사’라는 말이 재미있는데 나는 여기서 이 세 낱말을 각각 ‘싹수있는 사람’과 ‘보통인 사람’, 그리고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번역을 했는데, 풀이를 하는 동안 세 부류의 사람들의 구성이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을 상·중·하로 나눌 경우 ‘중’에 속하는 사람이 대략 절반을 차지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것을 우리의 현실과 견줘서 볼 때 ‘하사’에 속하는 사람이 8할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보는 까닭입니다.

시류에 합류해 그 시류를 거스르거나 새로운 미래를 말하는 것들을 무시하거나 비웃으며 가는 현실주의적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거기 해당된다고 보는 까닭인데, 미래는 언제나 그렇듯 현실적 조건보다는 미래의 희망과 가능성을 내다보며 나아가는 사람들에 의해 그 문이 열린다는 것도 이제는 알만큼 살았다고 해도 누가 크게 나무라지는 않을 듯 싶습니다.

눈 열린 사람에게나 보이는 道(도)라고 하는 것, 그것이 그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우습게 보이는 까닭을 도덕경은 ‘建言(건언)에 있는 것처럼’ 하고 말하는 그 다음의 여러 가지 사례들을 통해서 설명을 합니다. 제대로 된 도나 덕이라고 하는 것들은 얼른 볼 때에는 무모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허망한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으며, 심지어는 도나 덕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진실이 언제나 진실로 보일 수만은 없다는 것, 그래서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외면당할 수도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것은 진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본문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옛늙은이의 가르침, 그런데도 그런 제대로 된 가르침을 하품쯤으로 인식하는 이들의 태도를 大笑(대소)라고 말하며 그야말로 웃어넘기고 있는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명료한 가르침입니다.

날마다 좋은 날!!! - 풀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