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림사건의 또 다른 진실
부림사건의 또 다른 진실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14.02.13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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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一筆
80년대 부산지역의 최대 공안사건인 ‘부림사건’의 당사자들이 어제 부산지법으로부터 무죄판결을 받았다. 33년 만이다. 오랜 기간 묻혀 있다가 최근 영화 ‘변호인’의 열풍으로 국민들 사이에 새롭게 각인된 부림사건은 알려진대로 1981년 9월 공안당국이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과 교사, 회사원 등 22명을 영장없이 체포해 갖은 고문을 동원, 이중 19명을 기소한 사건이다.

특정 시국사건이 신문과 방송 등에 단골 이슈로 등장하면서 갑론을박의 대상이 되는 것만 봐도 과거 7, 80년대를 살아 온 사람들로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회(?)를 느낀다.

그 때 독서모임 회원들을 이른바 이적(利敵)으로 옭아 맨 책들은 지금도 서점에 진열되거나 혹은 찾는 사람이 드물어 구석에 처박혀 있을 법한 것들이다. 부림사건 공소장에 적시된 문제의 불온서적들은 영화 변호인에서 주인공의 열변을 통해 터져나온 ‘역사란 무엇인가’(E·H 카)와 ‘전환시대의 논리’(리영희) 등 10여권 정도였다. 이 책들에 대한 검찰의 공소내용은 이랬다. “자신이 희망하는 대학에도 입학하지 못하게 되자 이는 현 사회의 빈부의 격차와 같은 불평등과 부조리 때문이라 생각하게 되어 현실에 대해 불만을 품고 현 사회의 구조를 분석하고 비판한 서적들이다.”

지금 시각으로 접근하면 이런 내용은 오히려 돈을 주고라도 권장할 판이다. 실제로 당시 문제가 된 불온서적 내지 아예 금서(禁書)로 묶인 책들의 면면을 보면 그것이 곧 북한과 공산주의를 찬양하고 나라를 전복할 수 있다는 단정은 참으로 허망하기 그지없다. ‘역사란 무엇인가’는 독자들에게 역사를 해석하고 기술하는 관점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의문을 갖게 하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또한 ‘전환시대의 논리’는 70년대의 대 중국관계와 일본의 재무장 문제 그리고 베트남 전쟁에 대한 미국의 오류 등을 지적하며 당시 한국사회에 만연한 허위의식을 경계했을 뿐이다. 이러한 책들은 현재 국가적 화두가 된 ‘인문학’을 고민한다면 아마 대학생들의 필독서가 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실제로 7, 80년대 암울했던 시절에 마치 유행처럼 번졌던 독서모임은 말 그대로 인간의 존엄, 인문(人文)의 실체를 찾기 위한 비폭력의 작은 몸부림이었다.

문제는 이번 사안을 바라보는 한국사회의 예의 일그러진 이념적 치기(稚氣)다. 영화 변호인이 1000만 관객을 불러들이며 대박을 터뜨리자 보수언론들은 별에 별 사람들을 다 동원해 그것이 허구니 어쩌니 하며 깎아내리기에 혈안이 됐다. 냉정하게 말하면 부림사건은 우리나라 공안사건의 작은 한 부분에 불과하다. 이보다도 더한 엄청난 사건이 많았다. 이걸 가지고 이제 와서 누가 옳고 그르니를 따지면서 또 다른 성격의 이념대결을 벌인다면 우리로선 피가 거꾸로 솟는다. 부림사건은 5·18과 12·12의 치부를 희석시키려는 신군부에 의해 조작된 공안사건이었고 그 진실을 늦게나마 법원이 밝혀준 것이다.

그런데도 당시 수사 책임자라는 사람은 얼마전 방송에 나와 고개를 바짝 쳐들고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옳은 수사였다”고 핏대를 올렸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얘기는 바로 이런 데에 기인한다. 백번 양보해서 그 때의 시대적 상황에 어쩔 수 없이 저지른 일이라 하더라도 이제는 그 과오를 인정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한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다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의 그 험난한 여정이다. 부림사건에 대한 33년만의 무죄는 바로 이 나라 민주화가 그 33년의 지난한 투쟁과 무수한 사람들의 희생을 근거로 했고 그러기에 절대로 후퇴시키면 안 된다는 사실을 재삼 일깨우고 있다. 또 한가지는 그 때의 책들을 요즘 젊은이들이 단 한권이라도 읽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이런 바람이 통했는지 영화의 대박에 힘입어 몇몇 책은 졸지에 판매가 몇배로 뛰었다고 한다. 부림사건의 진실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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