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흡(未洽)
미흡(未洽)
  • 한명철 <인형조각가>
  • 승인 2014.01.15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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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조각가 한명철의 손바닥 동화-길우물 이야기

한명철 <인형조각가>

추사의 글씨를 보고 당대나 후대에 칭찬은 대단합니다만, 정작 그는 “젊어서 쓴 글을 두번이나 불 태웠다” 라든가 “열개의 벼루를 갈 아 구멍을 내고 천개의 붓을 닳도록 썼어도 편지글 하나도 못 익혔다”고 자탄했습니다. 이걸 보면 어느 누구도 만족이라는데 닿기는 어려운가 봅니다. 허난설헌도 죽기전 써논 시를 불태우도록 했다는 것도 마찬가지구요.

삼십년쯤 인형을 깎았는데도 여전히 칼을 잡으면 캄캄한걸 보면 저도 그렇습니다. 그야말로 그냥 견뎌내는것 이라는 말이 맞는 말인것 같지요. 해마다 연초가 되면 전년을 반성하고 새로운 각오로 시작하는 사람들도 그런가 봅니다.

헬스크럽에 신규회원이 늘어 자리가 없다는 보도를 봐도 사람은 다 비슷비슷함을 느낍니다. 49세에 죽은 정조가 십년쯤 살았더라면 얼마나 더 좋아졌을까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가 이루어낸 것을 허무는데 사년간 수렴청정한 정순왕후의 한 푹기(?)도 없었을 것이고, 수 많은 천주교 신자들의 순교가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예고 없는 죽음으로 멋진 엔딩이 없는 미흡함에 대한 아쉬움은 늘 큽니다.

풍성한 수확을 위해선 흙을 기름지게 하는게 중요합니다. 세종대왕이 있기 위해 아버지 태종이 있었고 영·정조 문예부흥기가 있기 위해 숙종이 있었습니다. 대신 그들은 많은 욕(?)을 먹는 수고를 감내해냈습니다. 강릉 경포대 남쪽 소나무 숲 동네를 초당이라고 합니다. 초당두부로 유명한데 허난설헌의 아버지 허엽의 호를 딴 마을입니다. 류성룡대감으로부터 “하늘은 한 가문에 어찌 글 짤쓰는 사람을 다섯씩이나 보냈는가?”라는 소릴 들은것도 젊은 날 초당 허엽이 수 많은 선생님을 찾아가 배운 덕입니다. 그래도 미흡하지만, 남아 있는 조각이 여전히 빛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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