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소설 그만 쓰자.
어설픈 소설 그만 쓰자.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3.12.15 2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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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보은·옥천·영동>

북한의 2인자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전격 처형된 것을 두고 소설이 난무한다. 기관총 90발을 쏴서 처형하고 시신에 불까지 질렀다는 끔찍한 소문이 전해지고, 장성택 세력의 근절을 위해 3만명에 이르는 피의 숙청이 이어질 것이라는 흉흉한 전망이 나돈다. 김정은을 수행한 자리에서 다리를 꼬고 주머니에 손을 넣는 등 건방을 떨다가 수양대군에게 당한 단종을 의식한 김정은에게 선방을 맞았다는 농반진반의 분석도 제기된다.

그가 총살 집행을 앞두고 “나라의 경제와 인민생활이 파국적으로 번지는데도 현 정권이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한다는 불만을 군대와 인민이 품게 하려고 했다”며 소신에 찬 모반의 변을 밝혔다는 믿기 어려운 얘기도 언론에 등장한다. 그러나 진실로 단정할 만한 대목은 없다. 솔직히 장성택이 죽었다는 물증도 없잖은가. 북의 완벽한 폐쇄주의는 역설적으로 어떤 가정과 추측도 가능하게 한다. 앞으로도 장성택의 죽음을 다루는 소설은 계속 연재될 테지만 진실을 확보하지 못하고 그저 소설들로 끝날 공산이 높다.

이런 각양각색의 추정에도 불구하고 장성택의 제거가 김정은의 권력기반이 그다지 견고하지 않음을 반증한다는 분석에는 이견이 없는 것 같다. 고모부를 공개적이고 신속하고 잔혹하게 처단해서 기반을 다잡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입지가 취약하다는 것이다.

‘모반’이라는 민감한 내용의 죄목을 판결문으로 공개하고, 선고와 동시에 사형을 집행한 것은 숙청과 처형이 숱했던 북에서도 전례가 없다고 한다. 주변과 민심을 압박할 필요성이 절박했다는 것이다. 대외적으로도 득될 것이 없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비판에 시달려야 하고 외자 유치에도 도움이 될 턱이 없다. 후견인인 중국도 뒷통수를 맞은 격이어서 향후 관계에 적신호가 켜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강수를 둘 수 밖에 없었던 것이 김정은이 놓인 처지라는 것이다.

우리가 주목하는 부분도 북의 체제 붕괴가 임박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인 것 같다. 역사적으로도 탄압과 공포를 뼈대로 한 철권정치와 반동정치는 수명이 길지않았다. 지도자들의 말로도 평범치 않았다. 히틀러와 무솔리니, 카다피 등의 마지막은 참혹했다. 그래서 나오는 것이 김정은이 이모부를 제물로 한 내부적 극약처방이 듣지않으면 체제 유지를 위해 대외적 도발을 감행할 지도 모른다는 추정이다. 일리가 있는 주장인 만큼 그에 대한 준비에 완벽을 기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우리는 2년전 김정은이 3대 세습체제를 열었을 때 그를 오판했던 전력이 있다. 아버지가 급사해 갑자기 권좌에 오른 20대 애송이가 산전수전 다 겪은 군과 당의 실력자들을 극복하고 체제를 유지할 가능성을 낮게 본 것이다. 정권 붕괴가 멀지않았다는 성급한 판단과 함께 유사시에 대비해야 한다며 호들갑을 떤 것도 지금과 꼭 닮았다. 결과적으로 이는 빗나갔다. 김정은은 과감하게 군부를 물갈이하며 기틀을 다졌고, 이번에도 할아버지 때부터 3대에 걸쳐 권력기반을 닦아온 명실상부한 2인자를 저항없이 제거하는데 성공했다. 입지 불안의 징후이자 입지 강화의 반증이기도 한 것이다.

가능성에는 대처하되 섣부른 확신에 매몰돼 우리가 갈 길을 유보하거나 가던 길을 바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북의 시대착오적이고 반인권적인 작태를 정쟁과 이념논쟁의 도구로 악용하는 장난질이 없도록 경계해야 한다. ‘종북(從北)’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장성택의 죽음을 제 입맛대로 각색하며 분란을 획책하는 얼치기 소설가들이 있다면, 그들이야말로 종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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