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라시 언론
찌라시 언론
  • 임성재 기자
  • 승인 2013.11.26 2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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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재의 세상엿보기
임성재 <프리랜서 기자>

‘찌라시’는 광고로 뿌리는 종이, 즉 전단지의 일본말이다. 오래전부터 증권가에는 ‘찌라시’라고 불리는 정보지가 유통되고 있다. 찌라시는 연예계 정보와 루머를 주로 다루고 있지만 때론 국가 정책에 관한 중요한 정보가 일간지보다 먼저 실리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찌라시는 증권가뿐만 아니라 기업 등 다양한 곳에서 활용되고 있다. 그런데 찌라시에는 정보를 얻게 된 과정이나 취재한 사람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기에 정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찌라시의 내용에 대한 판단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 된다. 이렇게 출처가 불분명한 정보와 루머가 실리는 찌라시를 우리는 언론이라 하지 않는다. 믿거나 말거나 그저 흥미 거리로 취급되어지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 찌라시와 찌라시 같은 언론이 주목받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고 노무현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서 NLL을 포기하는 발언을 했다고 울분을 토하던 김무성 의원이 검찰조사를 받고 나오면서 그 내용을 찌라시에서 봤다고 하면서 부터다. 국가기밀인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찌라시에 실렸다는 것이다. 어느 언론도 하지 못한 특종을 찌라시가 해냈고, 김무성 의원은 그 찌라시를 독점했다. 대단한 찌라시에 대단한 김무성 의원이 아닐 수 없다.

또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에 의하면 국정원이 작성한 기사를 언론사가 받아 싣고 국정원은 마치 언론사의 기사를 인용하는 것처럼 SNS에 유포시켰다는 것이다. 참 한심하고 부끄러운 찌라시보다 못한 언론이다. 그런데 공영방송이라는 MBC조차도 그 대열에 합세했다. MBC 인기프로그램인 ‘진짜사나이’에 이외수씨가 초청받아 해군 2함대사령부에서 강연을 했다. 그 사실을 알고 새누리당의 하태경 의원이 이외수씨의 천안함 사태와 관련한 발언을 문제 삼으면서 두 사람은 SNS상에서 설전을 벌였다.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런데 MBC는 천안함 유족들에게 사과한다면서 이외수씨가 출연한 부분을 통 편집으로 삭제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지금 MBC의 성향이나 방송사의 시스템 상으로 볼 때 당연히 이외수씨의 출연은 사전에 충분히 검토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별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여 녹화까지 마친 내용을 집권당의 국회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여 SNS상에서 공론화되었다고 해서 방송을 포기하는 것은 공영방송, 언론사임을 포기하는 비상식적인 일이다.

영국의 공영방송 BBC는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벌인 포클랜드 전쟁 당시 ‘엄정중립과 공정’이라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영국군을 아군이라는 표현대신 영국군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영국군과 아르헨티나군의 전과를 같은 비율로 보도했는데, 대처총리가 “포클랜드에 자식을 보낸 영국 어머니들의 눈물을 생각하라”고 격노하자 BBC는 “지금 아르헨티나의 어머니들도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런 자세가 공영방송, 바른 언론의 자세가 아닐까?

‘사회의 목탁’은 언론에 대한 가장 고전적인 레토릭이다. 또 언론을 ‘제4부’라고 부르는 것은 오직 국민의 알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공정한 취재와 보도를 통해 입법, 사법, 행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라고 부여된 막강한 권한이다. 그런데 이러한 권한을 정권을 위해, 자사의 이익을 위해, 기자 개인을 위해 쓴다면 사회의 목탁이 아니라 사회악으로 전락하게 된다.

최종심이 끝나지 않으면 죄가 확정되지 않는다. 이것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내란음모로 기소된 이석기 의원이나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 해산 청구 심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마치 기정사실인 것처럼 보도하는 언론, 훼손된 민주주의를 회복하자고 주장하는 시민단체를 정당에 공조한다고 엉뚱한 주장을 되풀이하는 언론, 정당의 성명서나 그대로 옮겨 쓰는 언론은 언론이 아니다. 우리 지역의 언론들도 한번 챙겨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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