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당 놀이(1)
서당 놀이(1)
  • 강대헌 <에세이스트>
  • 승인 2013.11.17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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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헌의 행복칸타타
강대헌 <에세이스트>

굳이 놀이하는 인간을 나타내는 ‘호모 루덴스(Homo Ludens)’라는 말까지 꺼내진 않아도 되겠지만, 오늘은 제가 혼자 노는 방법 가운데 한 가지를 꺼내 보려고 합니다.

머릿속이 복잡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 노는 방법입니다. 마음에 와 닿는 단어나 글귀를 붓펜으로 한자(漢字)로 쓰는 겁니다. 시간도 잘 가고, 재미지기도 하더군요.

간택(簡擇)한 것을 써 놓고는 옆에다 약간의 감상을 덧붙이는데, 일명 ‘서당(書堂) 놀이’처럼 생각하고 있답니다. 훈장(訓長)도 없고 학동(學童)도 없이, 저 혼자 노는 거죠.

못난 제 글씨를 보여 드릴 수 없다는 게 아쉽기도 하지만, 당분간은 저의 서당 놀이를 넉넉히 보아 주시길 바랄 게요.

1. 허송세월(虛送歲月). 상태가 안 좋아서,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무턱대고 이것을 써 놓고 있답니다. 정말로, 이리 살아선 아니 되는데 말입니다. 몹시도 답답하군요.

2. 허랑방탕(虛浪放蕩). 돼지가 우물에 빠졌던 것처럼, 주색잡기에 빠져 허우적대던 시간들이여. 오호, 내가 아비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 탕자(蕩子)요 성경의 고멜(Gomer)입니다.

3. 허풍선(虛風扇). 쓸 데 없는 바람만 허파에 집어 놓고, 휑한 먼지바람만 일으켰던 허풍선이로서의 세월입니다. ‘허(虛)’자만 나와서 적요(寂寥)하신 건 아니죠? 다른 것도 있답니다.

4. 만유(漫遊). 저는요, 한가로이 이곳저곳을 두루 다니며 구경하며 노는 만유의 삶이 아니었군요.

5. 춘몽(春夢). 봄보단 꿈에 자꾸 눈길이 갑니다. 봄은 짧더라도, 꿈은 길어지길 바라기에. 봄은 놓치더라도 꿈은 붙잡고 싶기에. 아, 하염없이 봄을 타느라 꿈을 꾼 듯 만 듯 넘어가버린 시간이 벌써 저만치 가 있군요.

6. 묵언부답(言不答). 내 안에 욕심과 잡념이 가득하니, 임께서 묵언에다 부답까지 더하시네요.

7. 중애(重愛). 무슨 여자 이름이 아닙니다. 가볍지 않아야 하는군요.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고 아낄 수 없을 거예요. 때론 마음을 보이지 않게 감추어야 합니다. 무거울 ‘중’과 사랑 ‘애’ 앞에 스스로 ‘자’를 생략해 보니(자중자애(自重自愛)에서 두 개의 자(自)를 빼니), ‘중애’가 나타났어요.

8. 춘기탱천(春氣撑天). 봄의 기운이 마치 하늘을 찌를듯하니, 꽃잎들이 온몸을 파르르 떨고 새들은 쏜살 같이 숲으로 뛰어드는 밤이군요.

9. 평안(平安). 궁극의 삶은 평안이다. 아담, 그대는 왜 불안해 떨고 있는가? 말씀의 땅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눈이 밝아져서 해를 똑바로 볼 수 없어서이다. 지금 평안하지 않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겁니다.

10. 창해일속(滄海一粟). 넓고 큰 바다 속의 좁쌀 한 알이 바로 저랍니다.

11. 장관(壯觀). ‘가히, 장관이로다!’이런 탄복의 찬사를 들어보고 싶군요.

오늘 진도(進度)는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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