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을 들어 주세요
촛불을 들어 주세요
  • 임성재 기자
  • 승인 2013.11.12 2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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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재의 세상엿보기
임성재 <프리랜서 기자>

지난 주 차를 서비스센터에 맡기고 택시를 탔다. 퇴근 시간이라 그런지 차가 많이 막혔다. 등을 기댄 채 창밖을 보고 있는데 여자 기사가 말을 건넨다. 차가 많이 막혀서 미안한 마음 때문이었을까? 기사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마침 병원 앞을 지나는 중이었다.

“병원 건물이 저렇게 많이 들어서는 걸 보면 병원은 돈을 많이 버는가 봐요”

“아픈 사람이 많은 게지요”라며 나는 가볍게 웃었다. 그렇게 말문을 열게 된 기사는 앞만 본 채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이십 년 가까이 택시 운전을 하는 동안 많은 건물이 들어서고 넘쳐나는 차들과 함께 새로운 도로가 생겼으며 사람들의 모습도 참으로 많이 변했다고.

그러나 자신은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변화와 발전은 고사하고 상황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고 씁쓸해 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우울증이 생길 정도라는 것이다.

1991년 처음으로 아파트 분양을 받았을 때는 내 집이 생긴다는 기쁨으로 희망이 넘쳤다고 했다. 비록 아파트 값의 일부를 대출받아 빚이 생겼지만 허리띠를 졸라매고 남편과 함께 열심히 벌면 갚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에 아파트단지 조성을 위해 터를 닦을 때부터 일주일이 멀다하고 현장을 찾아가 아파트가 지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무척 행복했었다고 했다.

그렇게 입주를 하고 지금까지 한 아파트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그 사이 다른 아파트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올라가는 물가는 따라 잡을 수가 없고 어찌된 일인지 벌어도 벌어도 통장에 빚은 늘어만 가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옮기고 싶었지만 살고 있는 아파트의 값은 그대로인데 새로 분양되는 아파트의 값은 엄두도 못 낼 가격이어서 꿈조차 꿀 수 없었단다. 이사는커녕 아이들 대학 등록금도 제대로 내 주지 못해 학자금 대출을 받아 학교를 다니고 있으며 늙으신 양가 부모님의 생활비는 물론 여기저기 안 아프신 데가 없어 병원비 대느라 등골이 휜다고 했다.

“화장실 갈 틈도 없이 어느 땐 밤잠도 포기하고 새벽부터 일하고 있지만 헉헉 거리는 삶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네요. 힘들어도 오늘을 참고 열심히 일하면 내일은 조금 나아지면 좋겠다는 희망이 있으면 좋겠는데요…” 하며 말끝을 흐린다.

지난 대선 때 등록금을 반값으로 해준다기에 노인복지연금을 준다기에 앞뒤 가리지 않고 주저 없이 그 공약을 건 후보를 뽑았다고 한다. 그러면 아이들이 나중에 갚을 돈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그러면 부모님들께 드려야 할 돈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소망으로 한 표를 찍었고 그 약속은 높은 분이 하신 것이기에 분명 지켜질 것이라고 믿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약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것 같아 매우 불안하고 부디 그 약속이 지켜지길 바란다는 것이다. 자신은 그저 택시 운전하며 하루 벌어 하루 사는 하루살이로 살아가고 있지만 대학 공부까지 하는 우리 아이들은 졸업 후에 빚에 쫓기며 아무 희망 없이 살아가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자신의 바람이라고 한다. 졸업 후에 취업이 될지 말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학자금으로 받은 빚까지 갚으며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턱 막혀 온다고…. 그러면서도 고개를 뒤로 돌려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예쁜 딸의 사진을 자랑스럽게 열어 보여준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시내 중심에서 촛불 집회가 시작되고 있었다. 차비를 거슬러 주며 자신은 저 대열에 직접 참가하지 못하지만 촛불이 우리의 희망이 되고 정의가 되고 미래가 될 수 있도록 부디 꺼지지 않게 누군가 들어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나는 차에서 내리며 잘가라는 인사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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