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나이스나를 떠나며
<38>…나이스나를 떠나며
  • 박상옥 <다정갤러리 대표·시인>
  • 승인 2013.10.1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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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아프리카 여행기

박상옥 <다정갤러리 대표·시인>

낯설음으로 신비로운 거리에서 쉽게 돌아서지 못하는 발걸음, 여행이란 길 끝 어딘가에서 끝내 돌아서야 하는 운명적 발걸음을 지닌다. 그리하여 머물고 싶다고, 떠나기 싫다고 아우성치는 자신을 달래며 천천히 돌아서는 것이다. 라군의 밤이 깊어지자 자정 가까워 상점들도 하나 씩 문을 닫았다. 숙소가 많지 않은 라군의 섬을 비우기라도 하듯,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더러 쉽게 발걸음을 돌리지 못하는 이방인들이 초저녁에 이어 술병을 앞에 놓고 검은 바다를 향해, 연인과 가족과 친구와 각자의 고독을 바다에 풀어내고. 이방인인 나는 그런 풍경을 읽다가 그 풍경에 잠시 풍덩 빠졌다. 그리곤 깜짝 놀라 접혀진 어둠속을 향해 서둘러 라군을 떨치고 돌아선다. 독일식 로지의 작지만 폭신하고 뽀송한 침구에 누우니 피곤이 물밀 듯 몰려온다. 길 건너 바닷물 소리가 자박자박 들리고 간간히 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7시 식사, 8시 출발이라는 아프리카 박의 말은 로지 측과 소통이 안 되어 어수선한 결과를 가져 왔다. 여행에서 소통의 문제는 머릿속에서 지운지 오래다. 담담히 체념 된지 오래다. 바꿀 수 없다면 빨리 잊어버리는 게 일정에 차질 없으니까. 하지만 일정 때문에 서둘러 일행들이 식사하러 갔지만 식사 준비가 안 되었다고 식당으로 들어서지도 못하게 하는 근엄한 안내인. 출입구에 식사시간을 써 붙였는데, 왜 안 보았냐는 태도가 어제의 깍듯하고 공손했던 것과는 달라 불쾌했지만, 그깐 일쯤 대충 섭섭지 않다. 확인하지 없이 전달한 아프리카박의 무성의가 조금 섭섭할 뿐. 자신의 주장과 원칙을 고수하는 흑인의 표정이 오히려 신뢰감이 가는 것은 왜일까. 어쩌면 이런 원칙조차도 독일식 로지와 같은 맥락인가 싶으니, 체념도 편하다.  

오늘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와인산지인 스텔렌 보쉬까지 간다. 길은 한 방향, 케이프타운을 향하여 가면서 오늘도 눈에 푸른물이 들도록 인도양 해안가 절경을 보게 될 것이다. 끝없이 아득한 목장을 부럽게 만날 것이다. 무려 450km이니 또 하루 종일 버스 속에서 시달려야 한다는 부담감. 이젠 그 좁은 트럭버스의 입구 앞에서면 몸이 절로 뒤로 밀려날 것만 같다. 아름다움도 계속 보고 지속되는 일상이라면 지루 할 테지만, 처음부터 싫었던 가파르고 좁은 트럭버스의 입구에선 아직도 영 적응이 안 된다. 아무려나 해안선 한 구비만 돌아서면 목장이고, 초원이고, 하늘이고 다시 수평선. 12시에 바다를 비껴들어선 작은 마을은 후끈후끈 몹시 찐다. 밖의 온도 34도. 늘 그렇듯이 길가 공원에서 대충 입맛도 없는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고 나자 몸이 급작스레 지친다. 휴식하며 작은 마을을 돌아 볼 수 있다지만, 훅훅 뇟ㅔ 오는 더운 바람과 뜨거운 햇살에 멀미나듯 속이 메스껍다. 어지럼증 까지 일어 서둘러 차를 탄다. 열어 놓은 차창 안으로 드라이기에서 뿜는 듯, 더운 바람이 훅훅 입을 막는다. “가요. 가요. 그만 갑시다!” 이구동성으로 외치자, 에어컨도 없는 차가 움직이고 조금 숨통이 트인다. 하늘과 닿아있는 아득한 직선 길, 차가 그 길을 향하여 앞으로 달리자 끝도 없는 타조 농장이 지나간다. 또 끝없는 소목장이 지나간다. 또 끝도 없는 양떼목장이 지나간다. 간간히 유칼립스와 소나무의 조림지가 보이지만, 오늘처럼 덥고 찌는 날씨엔 가당치도 않다. 그늘 없이 더위에 풀을 뜯는 소와 양들도 이 긴 여행처럼 지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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