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면과 염치
체면과 염치
  • 강대헌 <에세이스트>
  • 승인 2013.09.29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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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헌의 행복칸타타
강대헌 <에세이스트>

“재산이 없는 것이 가난한 것이 아니라 학문이 없는 것이 진정 가난한 것이다. 지위가 없는 것이 비천한 것이 아니라 염치가 없는 것이 진정 비천한 것이다. 오래 살지 못하는 것이 단명한 것이 아니라 저술이 없는 것이 진정 단명한 것이다. 자식이 없는 것이 외로운 것이 아니라 덕이 없는 것이 진정 외로운 것이다(無財非貧 無學乃爲貧 無位非賤 無恥乃爲賤 無年非夭 無述乃爲夭 無子非孤 無德乃爲孤).”

〈위로야화(圍爐夜話)〉에 나오는 말인데, 〈루쉰, 시를 쓰다〉라는 책을 옮긴 김영문씨가 SNS에 올린 포스트를 통해 알게 됐습니다.

그 중의 한 구절인 ‘무위비천 무치내위천(無位非賤 無恥乃爲賤)’이란 말을 따로 잡아내어 몇 번이고 써 보았습니다. 다름 아니라 ‘부끄러워할 치(恥)’라는 글자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어느 경우에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게 되는지요?

남을 대하기에 떳떳한 도리나 얼굴을 가리키는 ‘체면(體面)’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아무래도 관건이 될 겁니다.

이유를 떠나서 막상 체면이 깎이는 일이 생기면 정신이 아득하게 혼미해지는 분들이 있잖아요. 그때부터 그분들은 이런 말을 꺼내면서 상대방이나 주변 사람들을 무척 불편하게 만들곤 하죠.

“당신, 내가 누군지 알아?”

이 말이 나오고부터는 물과 불을 가리지 않는 단계로 들어가는 게 십중팔구 맞습니다. 자신이 누군지 부연 설명도 없이 같은 말을 무슨 후렴(後斂)처럼 내뱉으면서 마법의 주문이라도 거는 것처럼 눈동자는 점점 커지고 목소리가 우렁차집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고약한 침을 여기저기 튀기는 건 별다른 문제가 되지도 않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인 ‘염치(廉恥)’가 끼어들 자리는 보이지도 않게 됩니다. 이치(理致)가 거꾸로 되면서, 진정으로 체면을 생각하는 일에서 멀어지는 겁니다.

홍자성(洪自誠)의 〈채근담(菜根譚)〉과 진계유(陳繼儒)의 〈소창유기(小窓幽記)〉와 함께 사람들과 사귀며 살아가는 일에 대해 값진 가르침을 주는 책으로도 널리 알려진 왕영빈(王永彬)의 〈위로야화(圍爐夜話)〉에만 염치의 중요성에 대해 말이 나온 것은 아니겠죠.

‘벼룩도 낯짝이 있다’는 말은 너무 가벼운 보기가 되는가요?

사람마다 면목(面目)을 올바르게 세워야겠습니다.

‘정말 면목없습니다(I‘m deeply ashamed of myself)’라는 말을 하게 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누구든지 애를 써야만 하겠습니다.

다시 또 묻게 되는군요. 여러분께서는 어느 경우에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게 되는지요?

‘부끄러워할 치(恥)’라는 글자를 다시 또 들여다봅니다.

눈(目)이나 입(口)으로 듣는 게 아니라 오직 ‘귀(耳)’로 듣는 ‘마음(心)’이 있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분들의 달콤하지 않은 말씀까지도 들을 줄 아는 마음을 갖는 것, 스스로는 속일 수 없으니 자신의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것, 더 나아가서는 하늘의 소리를 듣게 되는 것에서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부끄러워하게 되는 세계가 열리는군요.

오늘처럼 이런 글을 쓴다는 것도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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