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넷, 현상을 언어로 환원한다면
스물넷, 현상을 언어로 환원한다면
  • 김태종 <삶터교회목사·생태교육연구소 터 소장>
  • 승인 2013.09.25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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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종의 함께 읽는 도덕경-땅에서 듣는 하늘의 노래
김태종 <삶터교회목사·생태교육연구소 터 소장>

希言自然(희언자연)이라.

故(고)로 飄風(표풍)은 不終朝(불종조)하고 驟雨(취우)는 不終日(불종일)하니 孰爲此者(숙위차자)인가, 천지(天地)니라. 天地(천지)도 尙不能久(상불능구)인데 而況於人乎(이황어인호)이겠는가.

故(고)로 從事於道者(종사어도자)는 道者(도자)를 同於道(동어도)하고 德者(덕자)를 同於德(동어덕)하며 失者(실자)를 同於失(동어실)이라.

同於道者(동어도자)면 道亦樂得之(도역락득지)하고 同於德者(독어덕자)면 德亦樂得之(덕역락득지)하며 同於失者(동어실자)면 失亦樂得之(실역락득지)니, 信不足焉(신부족언)이면 有不信焉(유불신언)이니라.

- 자연은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회오리바람은 아침을 넘기지 못하고, 소나기는 종일 쏟아지지 않으니 누가 이런 일을 하는가, 천지(자연을 담은 그릇)이다. 천지가 하는 일도 일관되지 않는데 하물며 사람이겠는가./ 그러므로 도를 따르기를 일삼으면 도를 도로 인식하고 덕은 덕으로, 잃음은 잃음으로 읽어낸다./ 도를 도로 인식하면 도 또한 기꺼이 도로 다가오며, 덕이나 잃음 또한 그렇게 된다. 믿을만하지 못한 데서 믿음은 생기지 않는다.-

 

얼른 와 닿지 않는 내용이긴 합니다. 希言自然(희언자연)은 ‘자연은 말이 적다’고 해석할 수도 있고, ‘말이 적은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는데, 나는 앞의 해석을 택합니다. 希(희)는 ‘바란다’는 뜻도 있지만, 빈도를 나타내어 ‘적다’ 또는 ‘드물다’는 뜻도 있는데 정확한 뜻은 ‘거의 없다’는 뜻이 강합니다. 이 뜻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연의 언어를 알아듣는 이는 거의 없다’고 하면 억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나는 그렇게 받아들입니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회오리바람이나 억수로 퍼붓는 소나기 이야기는 자연의 천변만화하는 것을 말한다고 보면 될 것이고, 거기서 이어서 사람의 일 또한 그렇다고 말을 하는 겁니다. 다른 곳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 자연의 연장선상에서 인간사를 읽어내고 있는 것이 엿보이는 대목이 바로 여기입니다.

도와 덕, 그리고 실(잃음)은 자연의 현상들에 의미를 부여한 각각의 이름이라고 읽으면 크게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도와 덕은 자연스럽게 연결이 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이 그 다음으로 나오는 것은 아무래도 와 닿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터이고, 그 때문에 맥락을 놓치는 해석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읽고 받아들일 줄 안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현상을 언어로 환원할 줄 아는 일이 왜 필요한지를 알 수 있고, 하나의 현상을 전부로 착각하는 어리석음에는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말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비로소 미덥지 않은 곳에서 믿음이 나올 수 없다는 말이 왜 거기 있어야 하는지도 이해가 될 것입니다.

여름 더위가 대단했는데, 아직도 더위가 싹 가신 것은 아니지만 틀림없는 가을입니다. 가을의 다양한 현상들을 언어로 읽어내면서 몸에 아로새긴다면 삶이 그만큼 더 아름다워지지 않겠느냐는 말로 오늘 이야기를 접습니다.

날마다 좋은 날!!! - 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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