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와 어린이의 인권보호
언론보도와 어린이의 인권보호
  • 연규민 <칼럼니스트>
  • 승인 2013.09.24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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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연규민 <칼럼니스트>

최근 검찰총장이 혼인관계를 통하지 않은 아들이 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이 보도는 당사자에게 최소한의 사실확인을 거치지도 않은 것으로 비판이 많다. 이어서 당사자의 강한 부인과 정정보도 요청도 무시한 채 계속 상처입히기를 해왔다. 당사자가 유전자 검사를 하겠다는 의지도 밝히고 여성측에서 해명을 하는 편지도 언론에 보냈으나 법무부장관은 감찰을 지시하고 이에 반발한 검찰총장은 사표를 제출했다.

이에 대해 어떤 이들은 검찰총장을 쫓아내기 위한 수순이라고 반발하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의혹을 스스로 밝히면 될 일이라고 죄인 취급하기도 한다. 사회의 이런 논란 가운데 우리는 중요한 것을 잊고 있다.

혼인 외의 아들이라고 지목당한 어린이의 인권 말이다. 조선시대 홍길동도 어린이의 인권을 부르짖었는데 도대체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홍길동 시대만큼도 어린이의 인권을 생각하지 못하고 사는지 속상하다.

세이브더칠드런이란 단체가 있다. 전 세계 120여 개 국가에서 어린이의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인종, 종교, 정치적 이념을 초월하여 활동하는 국제 구호개발 NGO이다(www.sc.or.kr). 도를 넘은 어린이 인권침해를 보다 못해 이 단체가 성명을 냈다. 이 신문의 보도는 어린이의 인권유린이라고 규정했다.

이 단체가 지적한 어린이 인권유린 부분을 보자. 어린이의 개인정보를 유출하고 친구들에게까지 출생의 비밀을 묻는 인권침해 기사를 연이어 게재하였다. 인터넷 미디어를 통해 사진이 무단으로 유포되도록 했다. 또 다른 신문에는 ‘아버지 전상서’라는 제목을 단 논설위원의 칼럼이 실렸다. 언론의 인권 침해가 도를 넘어 조롱으로까지 치달은 데 대해 참담함을 느낀다고 밝히고 있다.

언젠가 선거과정에서 여성 대통령후보에게 혼인 외 자녀가 있지 않느냐는 의혹이 제기된 일이 있었다. 이 때 대다수의 언론은 그런 의혹제기조차 보도하지 않았다. 유전자 검사를 하라고 강요하지도 않았다. 당사자나 언론도 혹시나 지목당하게 될 어린이의 인권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당시 보도태도가 옳다.

세이브더칠드런의 성명서를 더 살펴보자. 유엔아동권리협약 16조는 어떠한 아동도 사생활과 가족에 대해 자의적, 위법적 간섭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 아동복지법 17조는 아동의 정신적 발달에 해를 끼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합의가 헌신짝처럼 버려지고 있다. 우리 사회는 아동의 사생활이나 인격, 존엄성에 대해 아주 낮은 인식 수준을 최근 보도행태를 통해 드러내고 말았다.

그렇다. 세이브더칠드런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공직자의 윤리, 국민의 알 권리, 표현의 자유 등의 가치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그것이 공인도 아니며 성인도 아닌 한 어린이의 사생활 정보를 낱낱이 파헤쳐 공개할 근거는 절대로 될 수 없다. 현실에 존재하는 어린이의 사생활과 가족, 심지어 본인 이외에 그 누구도 알 수도, 간섭할 수도 없는 감정과 생각을 추측하여 공적 여론의 장에 내어놓는 것은 어린이에 대한 심각한 모욕이자 폭력이다. ‘창작물’이라는 단서를 붙였다고 해서 용서될 수 없는 일이다.

당사자의 명예를 위해서 진실이 밝혀지기를 원한다. 또한 모처럼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이를 저지하려는 세력의 의도라면 더욱 밝혀져서 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길 바란다. 아니면 부도덕한 이가 사정기관의 총수로 적합하지 못하다는 이들의 주장대로 진실이 밝혀지길 바란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도 어린이의 인권유린이 자행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어린이의 인격을 넘어지게 한 사람은 연자맷돌을 달아 바다에 던져야 한다는 말씀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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