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나이스나 라군을 향하여
<36>…나이스나 라군을 향하여
  • 박상옥 <다정갤러리 대표·시인>
  • 승인 2013.09.24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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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아프리카 여행기

박상옥 <다정갤러리 대표·시인>

나이스나는 남아프리카에서 가장 가고 싶은 휴양지로 선정된 곳이며 가장 인기 좋은 여행지다. 가든루트의 꽃이다. 여유 있는 사람들은 플레텐버그 베이에서 가까운 나이스나로 여행을 간다는데. 설레는 마음을 다잡고 향하는 곳, 지형적으로 아름다운 라군으로 둘러싸여 있다니 궁금함이 앞선다. 지중해를 연상시키는 새하얀 집들과 푸른 바다의 가든루트. 그렇게 달리는 길에서 산모퉁이를 돌고 돌아 바다가 보이는 언덕위의 오른쪽은 백인이 사는 동네다. 집들마다 잘 가꾸어진 정원이 널찍이 올려다 보이고 한 눈에도 문화적인 주거형태가 잘 갖추어져 있다. 이름 모를 꽃들과 화려한 부겐베리아가 자리한 언덕위의 저택들을 지나면, 문득 바다가 보이지 않는 언덕이 나타나고, 그곳은 영락없이 흑인이 사는 동네다. 집들은 대부분 집이라고 할 수 없는 판자촌이며 천막촌이다. 그나마 천막이 아닌 판자움막 앞에 아이들이 간간히 보이는 것이 그래도 희망이다.

백인마을이 인기척 하나 없이 적막하여 쓸쓸하다면, 흑인마을엔 어린이가 보여서 희망인 느낌이다. 그러나 저러나 여전히 여행객의 시선 앞에 펼쳐지는 키큰 유칼립스나무와 소나무들, 시원한 인도양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드넓은 목장들은 분명 아름답고 부러워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왠지 비애감으로 교차되는 백인마을 흑인마을을 몇 번이나 지나고 나서 나이스나에 도착이다. 도착하자마자 다친 정환군의 실밥을 뽑으러 병원을 먼저 찾는다. 까맣고 잘생긴 흑인 여의사가 ‘상처가 잘 아물었다’고 한다. 고된 여행일정임에도 불구하고 덧나지 않았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무엇보다 흑인의 상류층을 만나니 좋다. 무슨 까닭인지 못나고 낮은 자리의 것들의 용트림에 박수치거나 연민이 가는 것이다.  

라군이란 석호나 늪처럼 육지로 둘러싸인 바다에 연한 호수를 말하는데, 점심시간에 맞추어 하룻밤 묵어갈 로지에 도착한 방에서 귀퉁이 라군이 조금 보이는 데, 휴양지로서 평화로움이 느껴져 진다. 로지는 잡지책에서 봄직한 아기자기한 식당이라 주방에서 요리하는 게 들여다보인다. 머리 위로 기다란 쉐프모자를 쓴 백인 주방장과 백색 린넨의 커다란 앞치마와 머리캡을 갖춘 흑인 여자의 절도있는 안내가 긴장된다.

거의 매일을 야생으로 달려온 길에서 문득 마주친 길가의 이 로지는 구석구석 유난스레 세심하고 정갈하다. 테이블마다 흰 천이나 붉은 체크무늬로 덮여 있는데다 의자까지 리본장식으로 앙증맞게 꾸민 자리에 앉으려니, 그 옛날 엄마가 햇솜을 놓아 만들어준, 빳빳하게 풀 먹인 이브자리가 생각나 코끝이 찡하다.

가지 수가 많진 않지만, 정성스레 금방금방 만들어 내 놓는 음식을 가져갈 때 들여다보이는 주방은 얼마나 깔끔하던지. 손잡이가 길거나 둥글게 크거나 작게 황동으로 빛나는 그 식기들은 또 얼마나 우아하던지. 나는 일찍이 그 어떤 호텔에서도 이처럼 우아한 주방용품을 본 적이 없다.

다들 엄격하게 느낄 정도로 완벽한 로지식당에서 마음까지 배부른 식사를 한다. 왠지 헐렁한 여행복 대신 레이스가 달린 원피스를 입고 식사를 해야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하려니, 곁에서 알려준다. “이 모든 게 정통 독일식인데, 품격이 남다르지요.”

후-훗 멀고 먼 길 아프리카를 달리고 달려서, 정통 독일식 식사를 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아무려나 아기자기 꾸며진 작은 공간 하나도 소홀한 곳이 없다. 작아서 앙증맞고 예쁜 로지는 새하얀 벽면마다 미술품이 걸려 있고. 또 흰 벽면을 직각으로 파서 소품들을 장식하였다. 독일을 정식으로 안 가 본데다가 공부가 부족해서 모르지만, 작지만 대단한 품격이 느껴지는 독일식 로지가 나이스나와 함께 오래도록 마음에 남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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