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생존기
한가위 생존기
  • 강대헌 <에세이스트>
  • 승인 2013.09.22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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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헌의 행복칸타타
강대헌 <에세이스트>

모처럼 맞는 연휴가 길면 시간적인 여유는 부릴 수 있게 되지만, 때에 따라 알맞은 긴장감을 유지해야 하니 정신적으로는 초조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한가위 연휴는 잘 보내셨는지 모르겠군요. 저는 그나마 빈한(貧寒)하지는 않은 편이었답니다. 기어코 살아남았다고도 볼 수 있죠.

연휴 중의 하루는 오래된 짐을 정리하는 일로 보냈습니다. 버릴 것을 찾다가, 2005년도 업무 수첩에 끼어져 있던 두 장의 프린트에 눈길이 갔습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삶에 대한 조언과 정현종(鄭玄宗)의 시 한 편이었습니다.

그 때 무슨 생각으로 곱게 챙겨두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혼자 읽고 버리기엔 차마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런 식으로 여러분 앞에 내놓는 것도 나눔의 미덕이라고 여겨 주신다면 고두감읍(叩頭感泣)하렵니다.

먼저 〈멋있는 삶 10가지〉라는 내용입니다.

1. 긍정적으로 세상을 본다. (동전에 양면이 있다는 사실을 믿게 된다.)

2.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다. (생활에 활력이 된다.)

3. 반가운 마음이 담긴 인사를 한다. (내 마음이 따뜻해지고 성공의 바탕이 된다.)

4. 하루 세 끼를 맛있게 천천히 먹는다. (건강의 기본이자, 즐거움의 샘이다.)

5.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한다. (다툴 일이 없어진다.)

6. 누구라도 칭찬한다. (칭찬하는 만큼 내게 자신이 생기고 결국 그 칭찬은 내게 돌아온다.)

7. 약속 시간에 여유 있게 가서 기다린다. (초조해지지 않아 좋고 신용이 쌓인다.)

8. 일부러라도 웃는 표정을 짓는다. (웃는 표정만으로도 기분이 밝아진다.)

9. 원칙대로 정직하게 산다. (거짓말을 하면 죄책감 때문에 불안해지기 쉽다.)

10. 때로는 손해 볼 줄도 알아야 한다. (내 마음이 편하고 언젠가는 큰 것으로 돌아온다.)

이것쯤이야 하는 쉬운 말들이긴 하지만, 곱씹어 볼수록 만만치 않은 걸 어찌할까요.

다음으로 정현종의 시 ‘경청’입니다.

-불행의 대부분은/경청할 줄 몰라서 그렇게 되는 듯./비극의 대부분은/경청하지 않아서 그렇게 되는 듯./아, 오늘날처럼/경청이 필요한 때는 없는 듯./대통령이든 신(神)이든/어른이든 애이든/아저씨든 아줌마든/무슨 소리이든지 간에/내 안팎의 소리를 경청할 줄 알면/세상이 조금은 좋아질 듯./모든 귀가 막혀 있어/우리의 행성은 캄캄하고/기가 막혀/죽어가고 있는 듯./그게 무슨 소리이든지 간에,/제 이를 닦는 소리라고 하더라도,/그걸 경청할 때/지평선과 우주를 관통하는/한 고요 속에/세계는 행여나/한 송이 꽃 필 듯.-

고대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Marcus Tulliut Cicero)가 2,000 여년이 넘어가는 그 오래 전에 이미 “경청은 잊혀져가는 예술”이란 탄식을 했다고 하니, 지금이야말로 경청의 최적 시기가 아닐런지요. 더 늦어지기 전에요.

길다면 긴 이번 연휴에 제가 별 탈 없이 살아남을 수 있게 된 이유를 찾을 수 있겠군요. 그건 〈멋있는 삶 10가지〉의 5번과도 무관하지 않았고, 제 안팎의 소리를 조금이라도 경청하려고 했기 때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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