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로서의 채동욱
‘검사’로서의 채동욱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3.09.16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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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보은·옥천·영동>

우리 정치사에서 거의 전례가 없다시피한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권의 권력자를 여당이 공격하고, 야당은 대변하고 있다. 혼외 아들을 둔 혐의를 받다 스스로 물러난 채동욱 검찰총장을 두고 벌어지는 여·야의 공방전은 많은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여당은 그를 직위를 맡기에 부적절한 불륜남으로 몰고 있고, 야당은 정권에 밉보여 쫓겨난 소신남이라고 옹호하고 있다.

검찰총장을 정권의 눈치만 보는 주구라고 비판하는 야당의 모습은 눈에 익었지만, 야당이 팔을 걷고 나서 검찰총장의 방탄막을 자처하는 모습은 생경하기만 하다. 더구나 채 총장은 이 정권이 출범하며 최적의 인물로 검증해서 임명한지 반년도 안된 인물이다.

하긴 채 총장은 임명 당시부터 전무후무한 사례를 몇 건 만들었던 인물이다. 우선 그는 최초로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을 받아 발탁됐다.

2011년 개정된 검찰청법은 9명으로 구성된 검찰총장후보추천위를 두도록 하고 있다. 변협 회장 등 5명이 당연직이고, 4명의 비당연직 위원이 참여한다. 법무장관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던 인사방식에 민간의 목소리를 반영토록 개선한 것이다. 이 위원회는 3명 이상의 후보자를 법무부에 추천하고, 법무장관은 이 중 1명을 골라 대통령에게 임명제청한다. 채 총장은 임명권자의 독단을 견제한 이 하향식 인사제도의 첫 케이스에 이름을 올렸다.

무엇보다 그가 남긴 특이한 전례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박수를 받으며 통과했다는 점이다. 지난 4월 열린 청문회에서 그는 단연 독보적 존재였다. 다른 후보자들이 위장전입, 병역기피, 탈세, 논문표절 등 별별 의혹들에 시달리는 동안 그는 칭찬 세례에 시달렸다. 집요한 추궁과 독설로 후보자들을 몰아붙이던 야당 의원들도 그에게는 두손을 들었다. 박지원 의원은 “인사청문회가 아니라 ‘칭찬회’ 같다”고 했다. 박범계 의원은 “보좌진들이 ‘파면 팔수록 미담만 나온다’고 하더라”고 극찬했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정갑윤 의원은 “채 후보자가 ‘정말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문자 메시지가 많이 왔다”고 했고, 노철래 의원은 “의혹이 하나도 없던데 총장이 될 거라 생각하고 자기 관리를 해왔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재임 중에도 그는 검찰조직에서 보기 어려운 장면들을 보여줬다.

국정원장 수사에 간여한 장관을 소신으로 꺾었고, 수사팀을 지휘해 역대 정권과 검찰이 손을 대지못했던 전두환 추징금 1673억원을 받아냈다.

그런 그가 돌연 혼외 아들을 낳아 몰래 키우는 바람둥이로 전락해 버렸다. 결백을 주장하며 유전자 검사에도 응하겠다는 결연한 입장이지만 이미 세상은 둘로 갈려 그의 목소리보다 각자 내린 결론에만 귀 기울이는 형국이다.

여야가 각을 세우는 대부분 이슈들이 그렇듯이 이번에도 사람들은 양분돼 서로의 입장에 따라 믿고싶은 것만 믿기로 하고 귀를 닫고있다. 진상 규명의 유일한 해법인 유전자 검사가 이뤄질 가능성도 희박하지만 설령 결과가 나온다해도 필경 한쪽에선 ‘틀릴 확률 0.01%’를 들고나올 것이다. 결론은 채동욱은 진실과 상관없이 절반의 국민으로부터는 오명을 쓰고 살게 될 공산이 높다는 것이다.

그에게 따라붙을 오명에도 불구하고 적지않은 국민들은 다시 채동욱 표 검찰총장을 만나고 싶어한다.

한점 구설 없이 깔끔하게 청문회를 통과할 수 있는 검찰총장. 수사 일선의 후배검사들 소신을 지켜주기 위해 상관과도 일전을 불사할 수 있는 대찬 검찰총장. 철옹성 같았던 전두환 일가를 무릎끓린 것처럼 수사에서도 집요함과 뚝심을 발휘하는, 그런 검찰총장 말이다.

이런 이유로 명을 재촉했는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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