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
표정
  • 이수안 <수필가>
  • 승인 2013.09.15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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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밭에서 온 편지
이수안 <수필가>

우리 집과 포도밭 중간쯤에 큰 개 세 마리를 놓아기르는 집이 있다. 그 개들은 내가 트럭을 타고 지나가면 쫓아오면서까지 짖어댄다. 시베리안허스키 한 마리와 골든리트리버 두 마리가 트럭 꽁무니를 물어뜯을 듯한 기세로 으르렁거리면 운전석에서도 위협을 느낄 때가 있다. 깔끔한 승용차로 갈 때 평온한 표정으로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개 주제에 고물 트럭을 타고 다닌다고 만물의 영장에게 감히 무례를 범하다니. 그것 참 고약하다 싶다가도 한편 이해도 된다.

십 수 년 간 거친 일을 주로 해 온 내 트럭, 그 고단했던 세월에 표정이 너무 거칠어진 탓이 아닐까 싶어서다. 겉모양만 보고 짖는 개에게 아름답게 살아온 트럭의 삶을 몰라본다고 탓할 수는 없지 않은가.

재미있는 한 실험 결과가 나왔다. 외모가 실력을 평가하는데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실험이다.

외모가 뛰어나지 않은 음악가들의 음악을 전문가에게 들려주었다고 한다. 물론 외모는 보여주지 않고 음악만 들려주었다. 전문가들은 모두 그들의 음악성을 높이 평가했다.

다음에는 역시 그들의 음악을 그들의 모습과 함께 들려주었다고 한다. 평가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고 한다. 과학적이고 객관적일 것 같은 전문가들도 실력을 평가하는데 외모를 반영한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러니 면접을 앞 둔 취업 준비생들이 약간의 성형수술을 하는 수밖에.

더 아름답고 싶은 심리는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있다. 요즈음은 여성들은 물론이고 남성들도 약간의 성형수술을 하는 것이 예사라고 한다. 성형수술은 대개 납작한 코를 높이고 작은 눈을 키우는 등 자연스럽지 않은 부분을 조금만 고쳐 자연스럽게 해 주는 게 보편적이다. 욕심이 과해 성형수술로 기존의 얼굴에 균형을 맞추기보다, 심한 성형으로 손 대지 않은 부분과의 균형이 맞지 않으면 거북한 인상이 되고 만다.

결국 아름다움은 자연스러움과 같은 말이라는 뜻일 게다.

포도농사를 짓는 나는 성형수술을 수도 없이 한다. 너무 길쭉한 송이는 길이를 잘라 주고, 너무 뚱뚱한 송이는 옆을 잘라 날씬하게 만들어 자연스러운 모양으로 성형을 해 준다.

이렇게 겉모습을 성형해 주면 포도의 맛도 더 좋아진다. 즉 내면도 더 아름다워진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내 모습은 어떨까. 작업장 벽 거울에 비치는 나를 찬찬히 뜯어본다.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포도 수확 때문에 지쳐버린 겉모습 때문만은 아니다. 얼핏 드러나는 그다지 밝지 않은 표정이 거슬려서다. 그렇게도 많은 포도송이를 성형해 주면서도 나는 정작 스스로의 모습은 성형하지 못한 것이다.

중년의 나이를 넘긴 사람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따스한 마음씨에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은 그 따스함이 얼굴에 모두 드러나게 되어있다. 자주 짓는 표정의 주름이 가감 없이 얼굴에 새겨지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싶은 욕심은 있으나 심신의 여유가 없었던 나의 삶, 그런 나도 이제는 좋은 표정의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밝고 맑은 표정으로 할미를 미소 짓게 만드는 손녀딸 서연이가 있기 때문이다. 할미를 그저 미소 짓게 만드는 아기 천사 서연이, 할미의 얼굴에서 어두움이 드러나는 주름을 걷어내고 따스한 표정의 주름이 자리 잡게 해 줄 서연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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