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발자취를 찾아서 <37>
기독교의 발자취를 찾아서 <37>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06.09.06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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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제일교회

신준수 객원기자

"청년들 신앙의 길로" 복음열정 담아 전도사역

 하나님이 감동하는 영동제일교회 영동은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주곡·임계리 주민들이 황간면 노근리 인근에서 미군 항공기의 폭격과 기관총으로 학살된 역사의 아픔이 있는 곳으로 충북과 경북의 접경지역에 위치해 있다. 1900년대 초 전도인 서경춘씨 전도로 일찍이 복음이 뿌리 내린 곳으로 한국기독교 장로회 영동제일교회(담임목사 장영수)는 언더우드 선교사 30주년 선교 기념으로 세워진 94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교회다. 당시 경총노회는 전도인 이필구(연동교회), 김영식(연동교회), 김백원 목사를 영동지방에 보내 전도하게 했으며, 1912년 5월 15일 연동교회, 정신여학교의 후원으로 영동읍 금동에 초가집 한 칸을 빌려 영동읍교회로 출발했다. 기도실 매입과 전도인 경비는 서울의 교회, 선교사 노회 소관의 각 교회의 헌금으로 충당했으며, 서울 정신여학교에서 매월 7원씩 빠짐없이 보내 주었다. 또한 사경회 기간과 부활 주일에도 특별헌금을 거두어 영동교회에 보조 했다. 1915년 안동교회 최지환 전도인 부부 파송 1915년 안동교회 출신 최지환 전도인 부부가 파송되어 오면서 신자가 차차 증가하기 시작해 모이는 인원도 210여명에 이르렀다. 예배당은 영동면사무소 가옥을 건물만 110원에 매입해 사용했다. 최지환 전도인 부부는 1주일에 한 두 차례 이웃마을 방아재와 대바위 등을 방문해 전도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교인들의 신앙 지도를 위해 남자반, 부인반으로 나누어 사경회를 개최 했는데, 남자반은 청주읍교회에서, 부인반은 정신 여학교에서 교사를 초빙하여 실시했다. 또한 이들 전도인 부부는 매일 시내 외곽지역에 나가 농촌을 대상으로 전도하며 이웃마을 양산교회, 모산교회를 도와주는 등 영동지역의 복음 전파에 활기를 띠었다. 1921년 청주 선교부에서 정인식을 파송해 전도한 결과 좋은 결실을 얻었으며, 1922년에는 교회 봉사에 헌신을 다한 최지환 전도인을 영동읍교회 장로로 세워 영동읍교회가 최초로 당회를 조직했다. 이처럼 영동읍교회 초창기 복음 선교에 헌신한 최지환 장로는 지역의 유지로 신망이 두터웠던 사람이였으나 한국전쟁 때 공산군에 잡혀 유치장에서 많은 곤욕을 치르다 세상을 떠났다.  영동읍교회의 사회 계몽운동
충북지방 청년면려회가 전국적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로 탄탄한 조직과 활동을 펼쳐 나갈 무렵, 영동읍교회에서도 청년면려회가 조직됐다.

청년면려회는 기도와 전도, 사회계몽운동과 애국적 사회운동으로 청년들의 신앙을 성숙 시키고, 전도의욕을 고취시켰으며, 금주, 금연, 물산장려운동으로 발전했다.

특히, 영동청년면려회 회원들은 1935년 4월 한국 기독교 선교 5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성경통신을 공부했는데, 이때 참여한 10인 중 최명자, 안의학, 김각, 권신용, 이창재, 이필승 등 6명은 끝까지 성실히 계속하여 통신과를 졸업했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교회가 소실되어 목사관에서 예배를 보는 등 갖은 고초와 역경을 이겨낸 영동읍제일교회는 1957년 교육관에서 영동유치원을 개원 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교육이 보편화되면서 전국적으로 사립 어린이 집이나 유치원 개설이 유행 했다. 이 무렵 영동읍교회에서도 유치원을 개설해 어린이들의 지적, 정서적, 사회적, 신체적 발달과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가게 했다.

1961년 '영동읍교회'는 '영동제일교회'로 교회명을 변경하고, 오직 은혜로, 오직 성경으로, 오직 믿음으로 거듭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다

1923년 초가집을 개조해 예배당을 건축한 영동제일교회는 계산리 694-1번지 복잡하고 좁은 시장골목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요즘 계산리 675-3번지 150평 대지에 2층으로 지어질 새성전 건축을 준비중에 있다.

이에 장 목사는 "영동초등학교를 둘러싼 150여평의 자로 잰 듯 정사각형의 땅을 계약하던 날 하나님께서 우리교회를 위해 준비해 주신 땅이라는 감사와 기쁨이 넘쳤습니다"라고 말하는 장 목사는 요즘 영동군 계산리에 교회건축을 위한 첫 걸음을 떼고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이 귀한 역사를 모든 성도와 함께 이루어 가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오직 말씀으로,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를 2006년 목회 지침으로 세운 영동제일교회는 해마다 '교회 요람'을 제작해 교회연혁, 교회내 각 기관 월별 프로그램, 교회 구역편성을 기록해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누구나 편리하게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교회내 중등부, 청년회, 성가대, 교회학교, 한나회, 행복한 부부모임을 통해 섬김·봉사·기쁨을 이웃과 함께 모든 성도가 하나 되어 꿈을 이루는 교회가 되고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회복과 부흥케 하소서'를 2006년 교회 표어로 내건 영동제일교회 박미영 사모는 "교회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비전을 품고 영혼구원과 이웃구제, 균형있는 성도의 삶을 이루기 위해 비전의 사닥다리를 완성해 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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