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전(板殿)
판전(板殿)
  • 한명철 <인형조각가>
  • 승인 2013.09.03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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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조각가 한명철의 손바닥 동화-길우물 이야기
한명철 <인형조각가>

서울 지하철2호선 삼성역에 내리면 코액스입니다. 영화관, 백화점, 식당, 전시장 등이 한곳에 모여있어 그곳에가면 하루를 다 보낼수 있을만 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작은 도로 하나를 건너면 봉은사라는 유명한 절이 있는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18세에 봉은사에서 선과에 급제한 뒤 몰락해가는 조선 불교계를 중흥한 사명당의 고향같은 곳 이지요.

또한 절 서쪽에 위치한 조그만 전각 처마에 검은바탕에 금빛으로 칠해진 판전이라 새겨진 현판이 있습니다. 71세 병중에 과천사는 추사가 썼다고 현판 끝에 적혀있습니다. 이글을 쓰고 며칠후 세상을 떠나 그야말로 유작인 셈입니다.

70평생 쌓아 올린 학문과 경륜 그리고 이것을 다 펴보지 못하고 두번의 유배 생활로 병든 몸이 된 한(恨)까지 오롯이 녹아있는, 마치 장엄한 황혼같은 글씨이며 우리 미술의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날씨가 다 풀리지 않은 이른 봄날 찾아가 거의 한시간쯤 보고 또 보고 감동한 기억은 지금도 너무도 선명합니다. 마치 초등학생이 쓴것같은 삐둘 삐뚤하며 추사가 평생 지켜온 칼날같은 기운은 어디에도 없는 글씨입니다. 그 글씨를 다 이해 하지는 못했지만 모든 글씨의 끝자락에 닿은 배 같은 느낌과 최상의 것은 어린이 같은 천진 난만한것 이라는걸 보여 주었습니다.

먹먹한 기분으로 돌아서며 어쩌면 한국사람 이라면 백두산 천지를 보고 감동하듯 꼭 한번은 만나 봐야 할 우리 문화유산임을 확신했습니다. 이 하나를 만나기 위해 일부러 봉은사를 찾아가는 여행을 하십시요.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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