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참모 오만 지나치다
청와대 참모 오만 지나치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3.08.12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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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보은·옥천·영동>

EU(유럽연합)는 살아있는 거위에서 털을 채취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깨어있는’ 거위의 털을 뽑으면 불법이다. 도축하거나 마취시킨 거위에서만 털을 얻도록 하고있다. 동물 학대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유럽에서 사육하는 대다수 거위들은 산 채로 털을 뽑힌다. 털을 채취하는 사람은 다리 사이에 거위의 목을 끼우고 배를 드러나게 한 다음 사정없이 가슴털을 뽑아댄다. 거위는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질러대지만 가슴털로는 양이 안찬 인부는 목털까지 뽑아 버린다. 이 털은 인간들이 입는 방한용 패딩 재킷의 충전재로 사용된다. 우리들 귀에 익숙한 유명 다국적 아웃도어 회사들도 EU의 방침에 동조해 동물 학대 과정에서 채취된 거위털은 납품받지 않는다고 공언한다. 그러나 EU의 방침도 기업의 선언도 한낱 구호에 그칠 뿐이다. 지구상 거위들의 과반은 여전히 주기적으로 생살이 찢기는 고통을 인내하며 인간의 패션에 종사한다. 그제 정부의 세제개편안을 설명하면서 청와대 조원동 경제수석이 납세자를 거위에 비유했다가 된서리를 맞고있다. 조 수석은 ‘사실상 증세’라는 세간의 지적에 반박하며,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살짝 깃털을 뽑았다”고 주장했다. 이 말을 듣고 섬뜩해진 것은 언젠가 방송에 소개된, 거위들이 강제로 가슴털을 뽑히는 끔찍한 장면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이어 아프지않게 살짝 깃털을 뽑아준 정부에 감사하지 않는다면, 다음에는 털을 마구 뽑아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조 수석의 발언 취지는 그렇게 불경하지 않았다. 세목 신설과 세율 인상 등 직접적 수단이 아닌 비과세 감면·축소 등 간접적 처방으로 납세자 체감도를 최대한 낮췄다는 해명 끝에 나온 말이었다. 그런데도 여론은 거위와 털에만 집중했다. 거위론의 주창자는 프랑스 루이 14세의 재무상이었던 콜베르(1619~ 1683)다. 그는 “세금은 거위의 비명을 최소화하면서 최대한 많은 깃털을 뽑아내듯이 걷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성을 왕의 소유물 정도로 여겼던 절대왕정시대 화술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것부터가 보통 시대착오가 아니다. 납세자를 배려하는 취지로 이 말을 인용했지만 보는 각도에 따라서 냉혹한 세리의 논리로 비쳐질 수도 있다. “연간 16만원 정도의 세금 증가분은 고통없이 부담할 만한 수준”이라고 한 대목도 수십억원대 재산가로 알려진 그의 입을 통해 나올 말은 아니었다.

사실 이번 정부의 세제개편은 복지재원 확충을 위한 고육책으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수긍받을 만 하다. 대기업 증세와 부자감세 철회 등을 병행해 균형을 맞췄다면 조세저항없이 넘어갔을 지도 모른다. 정부의 방어논리가 충분한데도 증세논란이 야당의 장외집회와 촛불집회로 옮겨붙어 샛길로 빠져버린데는 조 수석의 경박한 발언이 한 몫을 했다.

걱정되는 문제는 세제개편이나 증세논란이 아니라 조 수석 발언으로 새삼 드러난 청와대 참모들의 경직된 사고다. 국민 설득보다 ‘증세없는 세원 확충’이라는 대통령의 소신 사수에 주력한 것부터가 그렇다. 실질적으로 세금 부담이 늘어났다면 징수 방식과 관계없이 납세자 입장에서는 증세를 당한 것이다. 증세를 거부해온 대통령의 심기를 의식해 사실상의 증세시책을 놓고 아니라고 극구 부정하다 납세자들의 심기를 자극한 꼴이 됐다. 라면회사가 면과 스프의 중량을 확 줄여놓고는 값은 그대로이니 인상한 것은 아니라고 우기다 소비자와 충돌한 것과 다를 게 없다.

참모에게서 국민을 거위에 비유한 왕조시대 발언이 튀어나온 자체로 청와대는 국민에 군림하려 한다는 의심을 사고있다. 청와대 참모들이 국민과 논쟁을 즐기기에도 적절치 않은 시국이다. 더 겸허한 마음으로 자세를 낮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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