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과 한통속 된 곳간지기.
도둑과 한통속 된 곳간지기.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3.08.05 1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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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보은·옥천·영동>

세무 비리는 좀처럼 밝혀지지 않는다고 한다. 납세자 입장에서 세무 공무원에게 건넨 금품은 뇌물이 아니라 고수익이 보장되는 투자에 가깝다. 100원을 투자하면 1000원이나 1만원으로 불려서 되돌려주는 은인에게 해가 될 짓을 할 투자자는 없다. 목에 칼이 들어오더라도 웬만해서는 입을 열지 않는다. 한번 거래를 트면 오랫동안 보장될 누이좋고 매부좋은 달콤한 관계를, 사법기관이 추궁한다고 해서 쉽게 포기할 리 없다. 검·경이 눈에 불을 켜고 나서서 무더기로 소환하고 관련 자료를 탈탈 털어 확증을 잡기 전에는 드러나지 않는다. 전군표 전 국세청장의 뇌물 수수도 검찰이 CJ그룹의 세금포탈 혐의를 잡고 수개월간 그야말로 이 잡듯이 뒤지는 과정에서 튀어나왔다.

국세청은 지난 2006년 CJ 세무조사에서 3560억원을 탈세한 정황을 확인했지만 한 푼도 추징하지 않았다.

전씨는 이 시기에 국세청장에 취임해 CJ로부터 미화 30만달러와 수천만원짜리 명품시계를 받았다. 산술적으로 따지면 CJ는 뇌물의 1000배 가까운 이득을 취한 셈이 됐다. 세상 어디에 이렇게 남는 장사가 있겠는가. 문제는 CJ의 부당한 횡재가 시장이 아니라, 국민의 창고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이다. 채 국고에 들어오지도 않은 세금을 공무원이 도둑질해 사업자와 나눠가진 것이다. 쥐꼬리만한 수입에도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 월급 생활자와 영세 자영업자들의 주머니를 털어 재벌의 배를 채워준 것이다.

많은 국민들은 전씨가 자신이 받은 돈과 시계를 “취임을 축하하는 인사치레 정도로 알았다”고 변명한 대목에 주목한다. 취임하는 국세청장에게 수억원대 축하금을 상납하는 것이 마치 재계의 관행이라도 돼온 것같은 뉘앙스를 짙게 풍긴다. 당시 그가 축하금을 받은 기업이 CJ에 그치지 않았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청장이 바뀔 때마다 국세청에 거액의 축하금이 답지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 축하금의 수백배에 달하는 세금이 새어나간 것 아니냐는 의문을 갖지않을 수 없다.

요즘 정부는 늘어나는 복지를 감당하지 못하는 빈약한 세수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있다. 올 상반기에만 10조원의 세수 차질이 예상된다. 1차적 해법을 이번에 국세청이 내놨다. 도둑과 내통해 세금을 빼돌려온 낯두꺼운 곳간지기들을 발본색원하는 것이다. 최근 5년간 국세청이 금품수수 등으로 자체 적발한 비리 공무원은 500여명이다. 드러나지않는 세무비리의 속성과 공직 특유의 동료 감싸기 관행을 감안할 때 자체 적발했다는 이 수치는 비리의 일상성을 그대로 반증한다. 이래서 국세청 비리를 차단하고 세무행정만 정상으로 되돌려도 세수 문제의 절반은 해결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검찰의 철저한 조사가 우선이다. 손을 댄 김에 CJ뿐 아니라 그동안 조금이라도 세금포탈 의혹을 받았던 기업들까지 전방위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빠져나간 세금은 철저히 환수하고 관련 공무원들은 조직 물갈이 차원에서 가혹하게 처벌해야 한다. 검찰은 이번에 CJ로부터 골프와 룸살롱 접대를 받고 교통비조로 수백만원을 챙긴 서울국세청장을 적발하고도 사법처리할 수준은 아니라며 기관 통보에 그쳤다. 이런 물렁물렁한 처벌이 국세청을 비리청으로 키운 것은 아닌지 짚어볼 일이다. 퇴직한 국세청 간부들이 대기업 사외이사로 가서 현직의 후배들을 타락시키며 수억원대 연봉을 챙기는 관행에도 제동을 걸어야 한다.

무엇보다 누더기가 돼 국회로 넘어간 ‘김영란법’의 복원 처리가 화급하다. 그래야 전씨처럼 수억원을 받고도 대가성은 없다고 우기는 뻔뻔한 공직자가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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