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기록을 통해 ‘나’를 경영한, 최성택 전 제천교육장
<14> 기록을 통해 ‘나’를 경영한, 최성택 전 제천교육장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3.07.18 19: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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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기억하는 사람들 충청인의 기록으로 본 시대읽기
수많은 기록의 가지 끝 놀라운 힘을 엿보다

1963년부터 43년간 교육공무원 재직
아내 김숙희씨도 교육공무원 퇴직
교원자격증·상장 등 가족 자료 '한가득'

훈시의 말·좋은 경구 등 스크랩
다양한 자료에 배움의 열정 고스란히

시민기록자들이 대부분 자신이 걸어온 시간의 흔적을 일기라는 형식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제천의 최성택씨는 기록으로 나를 경영한 인물이다. 하나의 기록이 또 다른 하나를 만들고, 다시 수많은 가지를 생성하고 있는 그의 기록들은 양이 많기도 하지만, 종류별로 분류해 놓아 효율성과 적합성에서 기록의 놀라운 힘을 보여준다.

최 전 교육장은 1963년 초등 교원으로 출발해 고등 교원과 교감, 교장, 제천교육장 등을 역임하며 40여 년을 교육공무원을 지냈다. 평교사로 출발해 제천 지역의 교육계 수장까지 오른 이력만 본다면 탄탄대로를 걸어왔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 길은 치열한 자기노력과 열정으로 헤쳐온 시간이었음을 서재 가득 꽂혀 있는 기록물들이 말없이 증명해 주고 있다.

◇ 부부교사의 교육 자료들

청주 사범대를 졸업하고 21살에 초등교원이 된 최 전 교육장은 2006년 정년 퇴직 때까지 43년을 교직에 몸담았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교직에 몸담았던 만큼 기록물들은 1960대 이후 교육자료들이다. 더구나 아내 김휘숙 여사 역시 교육공무원으로 퇴임했으니 대한민국 교육사를 엿볼 수 있는 자료들로 가득하다.

스크랩북에 담겨 있는 교육관련 자료들은 가족 수 대로 4권이다. “우리 가족의 역사이며 가장 큰 자산”이라는 최 전 교육장의 말처럼 부부가 교육자로 살아온 자료뿐만 아니라, 두 자녀의 학교 성적표와 상장, 대학 수험표 등이 빠짐없이 고스란히 모아두었다.

가장 오래된 교육자료는 최 전 교육장의 국민학교 졸업장과 1963년 단양군수 이름으로 된 국민학교 강사 발령통지서다. 마분지 종이로 된 발령장에는 가산국민학교에 명하며 ‘20호 2급봉 급함’이라고 적혀 있어 당시 교육공무원의 처우도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김휘숙 여사의 1962년 중학교 성적표는 지금과 다른 교육과목도 비교할 수 있다. ‘학교생활평가표’에는 필수과목으로 음악·미술·체육·가정이 포함되어 있고, 과학이나 영어 지리 등은 선택과목으로 분류돼 있다. 반면 198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닌 아들의 성적표에는 체육·음악·미술이 즐거운 생활로 평가되어 교육과목의 차이와 변화도 읽을 수 있다.

상장과 표창장이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지만, 표창장도 남과 다른 것을 받아야 한다는 게 최 전 교육장의 생각이다.

“1986년 교육계에선 처음으로 법무부장관상을 탔다. 법무부 장관상은 법을 다루는 사람에게 상을 주는 것이 관례인데 교육자가 탔으니 아주 특별한 의미 있는 상이다. 이처럼 상을 타는 것도 남들 다 받는 것을 받으려 하지 말고 남과 다른 것을 받으려 노력해야 한다”고 미소 지었다.

이어 “아내도 교육자 집안이라서 딸을 교육자로 키워 부부가 교사로 평생을 걸어왔다”면서 “교사로 재직하며 모은 자료 중에는 더러 빠진 것도 있어서 두 아이를 키우면서는 더 꼼꼼하게 자료를 모았다. 우리 가족의 역사가 여기에 담겨 있으니 가장 큰 자산이다”고 들려줬다.

◇ 효율적으로 기록한다 

나만의 가계부/ 교단수첩/ 용어수첩/ 주례사 등

배움에 관한 열정은 기록을 통해서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일기나 신문스크랩은 물론이고, 언어의 개념을 정리한 수첩, 주례사를 적은 글, 학교 교단에서 이루어진 훈시의 말, 좋은 경구나 문장 등을 자기만의 기록으로 정리해 두었다. “적는 것으로 만족하면 기록이 아니다”는 최 전 교육장의 소신은 기록의 분류에서도 빛이 난다.

“가계부를 보면 입출금 명목이 일반적인 것으로 만들어서 내 씀씀이와는 맞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그냥 가계부에 적힌 대로 써넣는다. 가계부도 자기에게 맞게 바꾸면 편리하다. 가족과 관련된 돈이나 자동차에 드는 비용 등을 분류해 사용해보면 가정경제도 한눈에 볼 수 있다”고 노하우를 들려줬다.

좋은 것도 내 것으로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같이 경험적 실천은 다른 기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손바닥만 한 수첩에는 교단에서 학생들에게 들려주었던 훈화의 말로 빼곡하다. 그날그날 들려줄 이야기를 고민하다 보니 그 역시 여러 권의 기록물이 되었다.

일반 용어를 풀이해 깨알같이 적어놓은 용어 수첩도 여러 권이다. 남에서 논리적으로 말하려면 말이 어떻게 생겨나고 어떤 의미로 사용되는지 언어의 개념을 정확히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최 전 교육장은 “아이들은 선생님의 훈화 시간이 힘들다. 그래서 짧게 말하면서도 메시지가 있는 것으로 준비한다. 글도 마찬가지다.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글로 하면서도 그 안에 뜻이 있어야 한다”며 “기록은 그런 것들을 가능하게 해준다”고 말했다.

또 “요즘 말할 때 부분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이 부분은 기계의 부품을 일컫는 말이다. 사람에도 사물에도 다 부분을 붙이는 것은 잘못됐다. 언어 개념을 모르고 쓰니 혼탁해질 수 밖에 없다”며“말에는 뜻과 의미가 있는 것이다. 안광이 종이를 뚫고 뒷면을 비추듯, 글자의 의미를 넘어 속뜻을 알려면 개념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콩나물에 물을 주면 밑으로 다 빠져나가는 것 같지만, 그 일도 계속하면 콩나물이 쑥 성장한 것을 볼 수 있다”며 “습관이 중요하다. 좋은 습관을 반복해서 하다 보면 생각하게 한다. 기록도 마찬가지다. 기록했기 때문에 남는다. 기록으로 제2의 나를 완성하는 것이다”며 습관의 중요성을 전했다.

최 전 교육장의 책꽂이 앞에는 명함 통이 여러개다. 받은 명함을 언론인, 후원인, 정치인 등으로 분류해 놓아 둔 두었다. 즉각 기록하고 이를 다시 분류해 활용하는 최 전 교육장의 일상의 습은 열정과 기록으로 ‘나’를 경영하는 삶의 과정이었음을 느끼게 한다.

◈ 최성택씨(70)

1942년 충북 제천 출생. 청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원공무원으로 43년 봉직하다 2006년 정년 퇴임했다. 제천고, 제천여고, 제천농고, 단양고 등에서 교직을 맡았고, 제천교육청 교육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음악협회 제천지부장·충북지부 부지회장, 한국동요음악협회 충북지부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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