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음성 사곡 마을의 역사, 성운경 회장
<9> 음성 사곡 마을의 역사, 성운경 회장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3.06.13 2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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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기억하는 사람들 충청인의 기록으로 본 시대읽기

"50년간 마을 대소사, 내 손길 닿지 않은 곳 없다"

농부 아들로 태어난 삶… 70년 사곡마을 터줏대감으로
산림계장 40년·이장 16년… 지금은 노인회장직 맡아

성적표·위촉장·일기 등 빛바랜 기록물들 꼼꼼히 보관
새마을 운동 축으로 농촌 근대화 상징성 고스란히

자신의 뿌리인 고향에서 평생을 마을의 역사와 함께 한 분이 있다. 음성 감곡면 사곡마을의 성운경씨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70여 년을 삶 터를 옮겨본 적 없는 어르신은 이 마을의 터줏대감이다. 군 입대로 고향을 등진 3년을 제외하면 올곧이 마을과 함께 살아온 셈이다.

스물 여섯에 제대해 고향으로 돌아온 어르신은 마을 산림계장으로 40년, 마을 이장으로 16년을 봉사하고 지금은 마을 노인회장직을 맡아 동네 대소사를 챙기고 있다.

마을의 역사 50년 속에 성 회장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마을로 들어오는 길부터 시작해 든든하게 마을을 감싸 안은 산 역시도 꼼꼼한 어르신의 손바닥에 들어있다. 이는 성 회장이 보관해온 많은 자료와 일기로도 확인 할 수 있다.


70년부터 그날의 기록을 수첩에 적는다는 성 회장은 작은 수첩 10여권을 책상 서랍에서 꺼내 보여줬다. 정갈한 글씨로 간략하게 적혀 있는 기록들은 잊고 산 지난 삶의 기록들이었다. 1975년 수첩에는 ‘7월 9일 닭 네마리 8,000원 출. 7월 14일 정기적금 및 대출금 이자 119,039 출, 전화요금(7월분) 11,060 출, 용돈 6.000원. 7월 19일 복숭아 45 살구 31 대금 -금 690,360원 찾음, 60만원 예금’등을 적어 농가의 살림살이를 엿볼 수 있다.

또 수첩이 커지면서 작은 달력이 표시된 10여권의 노트에는 ‘3월 1일- 아침부터 눈비가 섞여 내린다. 경노당에서 소일하다 점심 저녁 식사까지 하다. 3월 14일- 시장 규경(순택, 신원) 순대국밥 사먹고 돼지족발에 소주 한잔 구운김과 농기구(삽) 사가지고 귀가. 3월 24일 모탱이밭에 소석회로 묘목 식재 자리 표시하고 퇴비 제자리에 나누어 놓다.’등 그날의 일을 간략하게 적어두었다.

성 회장은 “아버지께서 살아계셨을 때 재산을 증식하면서 치부 관계를 한지에 적고 둘둘 말아 걸어두고 보관하셨었는데 지금이야 수첩에 적어두니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며 “매년 한지에 적어두었던 금전관계 기록이 구질구질해 보여 버렸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이 정말 기록이지 않았나 싶어 아쉽다”고 말했다.

일기를 보여주시던 성회장은 누런 봉투를 꺼내시며 ‘별거는 아닌데…’ 하시며 쑥스러워 하셨다. 두툼한 봉투 속에는 어르신의 음성 매괴초등학교 5학년과 6학년 성적표와 매괴중학교 성적표가 오랜 시간 속에 빛바랜 모습으로 등장했다. 어릴 적 머리가 좋아 영특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는 어르신은 ‘국어 98 사회생활 95 산수 93 잇과 100 보건 90 음악 87 미술 80 ’점을 받아 촉망받던 우수 학생임을 증명해 주었다.

이후 군대와 관련해 군인수첩 속엔 20대 초반의 성 회장이 수줍은 얼굴로 병역소집해제증, 예비군인수첩증, 군교육과정 수료증도 까마득한 기억을 상기시킨다. 또 산림계장과 이장 등 마을직을 수행하며 받은 위촉장, 임명장, 상장 등은 마을의 변화상까지도 진단할 수 있는 자료로 의미가 크다.

성 회장의 기록 중 이장직에 임명되며 받은 월 수당 명세서가 눈에 띈다. 1973년 7월 사곡면장 직인이 찍힌 임명장에는 ‘사곡 2리 이장에 명함 월수당 오천원을 급함’이라고 씌여있고, 1981년 1월 임명장에는 ‘사곡 2리 이장에 명함 월 40,000원을 급함’으로 적혀있다. 현재 이장 활동비로 매월 20만원이 지급되는 것과 비교할 때 물가인상과 활동비 인상폭을 비교할 수 있어 재미있는 자료다.

성 회장은 “1967년 처음 이장을 시작했을 당시에는 670원 정도의 수당을 받았다”며 “지금과 비교해 보면 약 300배 차가 난다”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어 “마을 산림계장 40년 동안에는 동네 뒷산에 나무심기 주도해 주민 소득으로 연계하는 사업도 벌였다”면서 “처음에는 리기다소나무만 잔뜩 심어 수익이 변변치 않았으나 뒤늦게 심은 낙엽송이 수익이 나 마을에 효자노릇을 했다”고 들려줬다.

마을의 유구한 역사도 농촌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현실은 벗어날 수 없다. 270명을 기록하던 동네 인구도 이제 80명도 채 안된다고 한다.

성 회장은 “70년대는 새마을 운동으로 젊은 사람들이 도로도 만들고 마을 일도 많이했다”며 “요즘은 젊은 사람도 없고 인심도 달라져 안타깝다”고 말했다.

강민식 박사(백제유물전시관 학예실장)는 “성 회장이 그동안 마을에서 보여준 활동들은 우리나라 새마을 운동을 축으로 한 농촌 근대화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며 “젊어서부터 크고 작은 마을 일을 도맡아 해왔고 지금은 노인회장으로 마을을 지키고 있는 모습이 담긴 자료들은 사곡마을의 역사라 할 수 있다”고 평했다.  자료 하나 하나를 들춰보다 보니 성 회장의 삶과 마을의 역사가 수레바퀴처럼 잘 굴러온 느낌이 들었다. 총명함으로 칭찬이 자자했던 청년이었기에 입신양명의 뜻이 없었던 건 아니겠지만, 시대가 사람의 앞길을 마을로 깊이 들이게 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소박하게 살아온 성 회장의 삶이 기록으로 더 빛나는 순간이다.

◈ 성운경씨(76)

1937년 충북 음성 감곡면 사곡리에서 출생. 17살에 결혼하고 23살에 군에 입대했다. 1962년 군 제대 후 고향에정착해 마을이장으로 16년, 산림계장 40년 등 마을의 대소사를 맡아 추진했다. 현재 사곡 2리 노인회장, 노인면분회 부회장, 감곡중학교 제8회 동창회장, 감곡면 협농회장, 감곡농협운영평가자문위원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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