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징금 몇푼 받는 것이 문제인가
추징금 몇푼 받는 것이 문제인가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3.06.10 21: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보은·옥천·영동>

나는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해 두가지 확신을 갖는다.

하나는 그가 역대 최악의 대통령이라는 점이다. 쿠데타와 광주 학살을 발판으로 집권해 재임 중에는 재벌들을 윽박질러 부정축재 신기록을 세웠다. 임기 후에도 끊임없이 국가와 국민의 뒷통수를 때렸다.

또 하나의 확신은 이런 결정적 흠결에도 불구하고 퇴임 후 가장 끗발좋은 전직 대통령으로 군림했다는 점이다. 자신은 물론 식솔들과 관련해 끊임없이 구설을 양산하며 건재를 과시해온 점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지난해 그는 육군사관학교에 초청돼 생도들의 사열을 받음으로써 퇴임한지 20년이 넘도록 식지않는 막강한 위세를 과시했다.

그는 내란죄와 반란죄 등으로 사형을 언도받았던 인물이다. 국가 반란의 수괴로 사법적 판단을 받았던 인물이 단상 한복판에서 군의 간성인 생도들의 경례를 받는 모습은 충격이었다.

그의 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정황은 그 전에도 많았다. 출타할 때마다 관할 경찰서는 직원들을 교차로로 보내 신호기를 조작하며 그의 이동을 도왔다. 진보 성향의 한 젊은 국회의원은 당선되자마자 그를 찾아가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러나 이날 육사에서 벌어진 퇴행적 해프닝만큼 그의 존재가 선명하게 드러난 적은 없었다.

“나 아직도 살아있으니 까불지 말라”는 세상을 향한 일갈이자 시위에 다름었었다.

나는 12,12의 본질을 밝히는 상징적 대목으로 1979년 그날 밤 서울 장지동 특전사령부에서 벌어진 패륜적 사건을 꼽는다.

그날 사령부에 일단의 무장 병력이 들이닥쳐 정병주 특전사령관 집무실에 총격을 퍼붓고 그를 연행해 갔다. 이날 동원된 군인들은 특전사 예하 3공수여단 병력이었다. 자식이 아비를 친 꼴이었다.

최세창 당시 3공수여단장은 이날 쿠데타에 시동을 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의 하명을 받고 하극상을 벌였다. 쿠데타군에 회유된 사령부 참모들은 문을 닫아걸고 직속상관이 피를 흘리며 붙잡혀가는 상황을 외면했다. 비서실장만이 사령관실에서 저항하다 총에 맞아 숨졌다. 대한민국 군인사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사건이었다.

군의 역사에 치명적 오점을 남긴 한가지 이유만으로도 그는 육사 근처에도 가서는 안될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단상에서 아내와 손녀딸의 손을 잡고 생도들로부터 충성 의례를 받은 것이다.

그날 그 장면은 우리 사회가 아직도 5공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확증으로 다가왔다. 우리가 16년이 지나도록 그에게서 미납 추징금을 받아내지 못하는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한 순간이기도 했다.  

최근 그가 내야 할 추징금 징수시효가 임박하며 입·사법부가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국회는 각종 법안을 마련하며 그를 압박하고 있다. 검찰도 전담팀을 만들고 숨겨놓은 재산 찾기에 들어갔다. 그도 이제는 내리막길을 타기 시작한 것일까. 하긴 올해 들어서 그의 입지가 흔들리는 기색이 엿보이기는 했다.

며느리가 자녀를 외국인학교에 부정입학시킨 혐의로 약식기소되고, 29만원이 전재산이라던 그의 손녀는 최고급 호텔에서 초호화 결혼식을 올려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최근엔 아들이 조세피난처인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 컴퍼니를 운영 중인 사실이 드러나 역외탈세 의혹을 받고있다. 격앙된 여론이 국회와 검찰의 든든한 우군이 되어 20년 가까이 굴절돼온 시대를 바로잡아 줄 것 같았다.

그러나 이 기대감은 서서히 식어가고 있다. ‘전두환 추징법’이 국회에서 위헌 시비에 휘말려 표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법안 지원이 안되는데 검찰이 홀로 뛰고 날 재간이 있겠는가. 앞으로도 그는 세상을 비웃고, 세상은 그의 의지대로 돌아갈 모양이다. 추징금 몇푼 받아내는 것이 진짜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