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결정과정의 민주화
의사결정과정의 민주화
  • 연규민 <칼럼니스트>
  • 승인 2013.06.04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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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연규민 <칼럼니스트>

일전 우리사회 민주화운동에 헌신해 오신 한 어른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우리 사회의 문제를 쉽게 표현해 달라고 부탁했다. 민주화과정에서 투쟁에 나섰던 이들은 전문성을 갖출 기회를 잃었다. 투쟁에서 비켜나 있던 이들은 그 사이 전문성을 갖췄다. 민주화 시대에는 전문성을 갖춘 사람들이 세상을 이끌고 간다. 더 쉽게 말하면 민주적인 정신을 갖춘 사람은 전문성이 없고, 전문성을 갖춘 사람은 민주적인 정신이 부족하다. 이 문제는 일제치하에서 해방을 맞는 과정에서도 흡사하다.

제도적인 민주화가 상당하게 이루어졌다고는 하나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절망감을 느낄 때가 많다. 소속 전문가협회를 통해 어느 기관의 정보공개심사청구위원으로 추천을 받은 적이 있다. 어찌된 일인지 위원회가 출범하도록 연락이 없다. 뒤늦게 담당자로부터 위원정수가 줄어 부득이 위촉하지 못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이 기관은 전문직종의 협회에서 시민단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협회원을 추천하자 내부 규정을 변경하여 위촉하지 않은 것이다.

정부가 국민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중요한 두 가지 요소가 있다. 서비스 전문가와 서비스조직이다. 이 두 요소를 적절하게 조합하고 기능을 조정하면 국민들에게 일관되고 효과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서비스전문가와 관련하여 두 관점이 존재한다. 전문가의 입장에서 보는 지위향상 관점과 서비스 자체에서 보는 관점이다. 지위향상관점은 전문가의 특권과 지위를 보호하고 확장하는 기능을 하게 된다.

반면 서비스관점은 전문가들이 결핍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욕구(needs)에 대하여 서비스를 촉진하는 수단으로 기능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런 입장에도 불구하고 윌렌스키나 르보 같은 학자는 전문가주의는 사회개혁과는 모순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적 보상과 사회의 인정만을 추구하여 전문가들은 살찌고 게을러지고 결국 부패하게 된다. 이들은 당장 인정받기 위하여 눈앞의 성과에 집착하며 기술적 측면에만 빠져든다. 거시적으로 사회개혁과 발전에는 관심과 노력을 쏟지 않는다.

전문가는 결핍상황에 놓인 국민에 대한 서비스보다는 자신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일이 더 많다. 듀몬트라는 학자는 전문가들이 어떤 행동을 하게 되는 진짜 동기는 “빈곤에 대한 개인적인 두려움, 부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탐욕, 난해한 기술과 복잡한 지식에 대한 매혹, 높은 지위와 다른 사람을 통제하는 권력에 대한 동경”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전문가 집단의 이런 속성을 잘 아는 관료들이 각종 위원회를 구성하는데 전문가들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교수집단과 변호사집단, 의사집단을 선호한다. 특히 이들 중 변호사나 의사 자격을 가진 교수를 더 선호한다. 그러다보니 이들 집단은 국회의원 구성에서도 독점적 다수를 차지한다.

그래서 전문가 집단의 특권을 줄이거나 통제하는 노력이 등장했다.

국민들이 전문가를 일정하게 통제하도록 시민들을 직접 참여시키는 방법이 있다. 또 하나는 지역사회 사정을 잘 아는 비전문가를 포함시키는 방법이다. 그 외에 의도적으로 같은 기능을 하는 조직을 중복해서 만들어 경쟁을 시키는 방법이다.

그러나 위의 사례에서 본 것처럼 위원회의 구성에 관료들의 선호에 따라 인위적으로 선택을 바꾸면 소용이 없다. 입맛에 맞는 시민단체를 골라 추천을 받으면 시민참여도 무력화된다. 그렇다고 조직을 복수로 만들어 경쟁을 시키면 엄청난 낭비를 초래한다. 결국 위원회 구성이 민주적으로 되는 것은 시민들이 두 눈 부릅뜨고 감시하고 언론이 살아 있어 심층적으로 취재하고 보도할 때만 가능하다. 통합 청주시의 구 이름을 정하는 일이 축제가 되지 못하고 감동이 없는 것은 분명 위원 구성이나 투표 참여자 구성에 감동이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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