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부름센터가 학교폭력 해결사로 나선 나라
심부름센터가 학교폭력 해결사로 나선 나라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3.06.03 2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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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보은·옥천·영동)

이젠 학교폭력 해결에 깡패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설 모양이다.

자녀를 학교폭력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심부름센터를 찾는 학부모들이 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인터뷰한 한 심부름센터 관계자는 지금까지 40여건을 의뢰받았지만 한건도 실패하지 않았다고 자랑했다. 조폭인양 문신을 보여주며 가해 학생을 위협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고 한다. 위협에 그치지않고 때로 폭력도 행사한다고 했다.

기본 150만원에서 처리기간이 길어지면 500만원까지 받는단다. 큰 돈이지만 자식이 지옥을 벗어나게 해주겠다는 데 마다할 부모가 있겠는가. 아침 신문을 보니 한 주부는 붓던 적금을 해약해 심부름센터에 주고 아들을 나락에서 구했다고 한다. 이 주부는 “쓰고 싶은 것 참아가며 모은 돈이지만 전혀 아깝지않다”고 했다.

지난해 서울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가 시내 98개 초·중·고교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 10명 중 4명 꼴로 학교폭력 피해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결과가 사실이라면 심부름센터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특수를 만난 셈이다. 앞으로는 조폭을 사칭한 심부름센터 직원이 아니라 조폭이 이 무궁한 시장에 직접 진출할 가능성도 높다. 폭력배들이 학부모들을 고객삼아 당당하게 학교 문제에 개입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얘기다.

폭력으로 폭력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속출할 부작용들이 큰 걱정이다. 우선 이 고육책이 실패하거나, 시간이 지나서 약효가 떨어질 경우 사정은 더욱 악화할 수 밖에 없다.

요즘 중·고등학교 일진들은 성인 폭력배 뺨을 칠 정도로 영악하다. 자신을 제어한 물리력이 피해학생의 부모가 심부름센터에 의뢰한 일회적 처방일 뿐이고, 그래서 에프터 서비스가 없다는 사실이 간파될 경우 전보다 훨씬 가혹한 보복이 가해질 것이다. 타깃을 잃은 가해 학생들이 새로운 대상을 찾아나설 가능성도 농후하다. 성인 폭력과 학교 폭력이 직접 연계되는 위험한 상황도 피하기 어렵게 된다. 결정적으로 이는 범죄행위로 귀결될 수도 있다. 심부름센터에 해결을 의뢰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폭력을 청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학교도 경찰도 믿지못하는 부모의 마지막 선택이겠지만, 심부름센터의 유혹만큼은 떨쳐야하는 이유이다.

이런 사태를 초래한 장본인들은 그동안 학교폭력에 대해 철저하게 무능으로 일관해온 경찰과 학교, 교육당국이다. 사고가 터질 때마다 은폐와 축소에 급급하고 실속없는 대책으로 증상을 키워온 교육당국과 학교의 책임이 크다. 학교폭력을 4대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척결을 외쳐온 새 정부들어서도 주목할 만한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교내 고화질 CCTV의 확대 설치가 고작이다. 서민들이 이용하는 진주의료원을 만성적자를 들어 가차없이 폐업시킨 능률과 실질의 신봉자 홍준표 경남지사 같았으면 효과없는 CCTV에 들일 돈 수백억원을 학교폭력의 실효적 근절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심부름센터 지원으로 돌렸을지도 모른다.

진짜 부끄러워해야 할 조직은 경찰이다. 경찰이 할 일을 심부름센터나 폭력배들이 대신하는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함바 비리에서 증거 은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죄목과 혐의로 총수 급들이 줄줄이 실형을 받거나 검찰에 불려다니는 작금의 처지에 비할 바 없는 치욕스러운 현상이다. 치안 일선을 강화하는 실무적 개혁과 현장을 뛰는 직원이 평가받는 신상필벌 원칙이 절실하다. 이번에도 변화를 보이지 못하면 심부름센터만도 못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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