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꾸하지 않는 것이 상책
대꾸하지 않는 것이 상책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3.05.27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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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보은·옥천·영동)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 시장은 일본 제2의 도시 오사카의 맹주다. 그는 자나깨나 열심히 공부해서 변호사가 됐지만 본업보다 방송의 예능프로에 출연하는 것을 더 즐겼다.

방송에서 쌓은 대중적 인기를 자산 삼아 정치에 입문, 38살의 나이에 오사카부(府) 지사에 당선됐다. 자신을 발탁한 중앙정당과 결별하고 지역정당인 ‘오사카유신회’를 창당했고 이때부터 전국적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오사카 시장과 엇박자가 나자 다음 지방선거에서 자신은 급이 낮은 오사카시장에 출마해 당선되고 지사에는 측근을 출마시켜 당선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오사카부의회도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그는 ‘유신8책’으로 불리는 개혁시책을 강단있게 밀어붙이며 정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지난해 오사카유신회를 전국 정당화한 ‘일본유신회’를 만들어 총선에서 제3당으로 도약시켰다. 핵무장을 외치는 극우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그를 차세대 총리감으로 꼽는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올해들어 그는 추락하고 있다. 종군위안부와 관련해 경박하고 무지한 발언을 마구 쏟아내면서 편협한 우익을 넘어 천박한 인격자로 거듭나면서부터다. 여성단체 등 지지자들은 등을 돌리고 정책연합을 고려하던 자민당도 선을 그었다.

외국의 정치인을, 그의 사생활까지 뒤적거려가며 왈가왈부하는 것은 지면을 낭비하는 짓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종군위안부를 돈독이 올라 전장까지 따라다니는 매춘부로 매도하는 잔혹한 여성관을 드러낸만큼 여성과 관련한 그의 과거사는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하시모토는 지난해 한 주간지에서 과거의 추문이 드러나 곤혹을 치렀다. 변호사 시절 한 호스티스와 1년여간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했던 사실이 폭로됐다. 그와 관계했던 여성은 주간지에 하시모토의 독특한 성적 취향까지 노골적으로 까발렸다. 낯이 뜨거워 차마 지면에 옮기기 어려울 정도의 수위였다.

그는 쿨하게 대처했다. “오사카 지사가 되기 전 성인군자처럼 살지는 않았다”고 당당하게 맞섰다. “아내가 걱정이다. 집에 가면 엄청난 페널티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고 여유를 부려 기자회견장에 폭소가 터지게 했다. 우습게도 그는 한참 바람을 피우던 그때 ‘아버지의 날 위원회’라는 단체로부터 ‘베스트 파더’상을 받았다. 

‘전쟁 때 군인에게는 위안부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스캔들이 들통나자 “성인군자처럼 살지는 않았다”고 여론을 되받아 친 그에게는 숙명적일 수밖에 없는 소신이다. 평화시 변호사에게도 필요할진대 하물며 포탄이 날아다니는 전시의 군인에게는 두말할 나위가 없어야 하는 것이다. “전 세계 모든 군대가 사실상 위안부를 운영하지 않았느냐”는 항변이나 주일미군에 “성매매 업소를 활용해보라”고 한 우정어린 조언도 같은 맥락이다.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지지 않으려는 처절한 발버둥에 다름아니다. 그래야 외도에 열을 올리던 와중에서도 기꺼이 받았다는 ‘베스트 아버지상’의 권위도 훼손되지 않는 것이다.

종횡무진에 좌충우돌을 보탰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당 똘마니들 외에는 누구로부터도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일본을 이끌 차세대 리더에서 국제적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미국에 꼬리를 내리면서 그의 몰골은 더 추해졌다. 주일미군에 권장했던 성매매 발언만 취소했다.

종군위안부 피해 노인들과는 싸울만 해도 승전국 미국은 감당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그가 그간의 입질에서 얻은 것은 자신의 초라한 실체를 고스란히 대내외에 알린 것밖에 없다. 그가 짓더라고 더이상 대꾸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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