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공원’ 가는 길 - 고(故) 남경훈 부국장을 떠나보내며
‘목련공원’ 가는 길 - 고(故) 남경훈 부국장을 떠나보내며
  • 장선배 <충북도의원(청주3)>
  • 승인 2013.05.23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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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장선배 <충북도의원(청주3)>

봄이 사라진다는 말이 실감난다. 올해는 특히 더 심하다. 지대가 높은 곳에서는 5월 초까지 농작물이 냉해를 받을 정도로 밤에는 추웠다. 5월 중순을 넘어서자 곧바로 섭씨 30도가 넘는 여름이다. 풀과 나무도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오월 스무 사흗날, 청주시 월오동 목련공원 가는 길에는 벌써 아카시아 꽃이 푸른 잎 속으로 몸을 숨기고 있다. 망초대는 굵을 대로 굵어졌고 애기똥풀도 지천으로 올라와 있다. 여느 풍경과 다름없이 똑같은 녹색의 물결이지만 내면에서는 개체들 모두가 급속하게 변하는 기후에 크게 당황하면서 적응하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으리라.

지역언론에 25년여 간 몸담았던 고(故) 남경훈 부국장을 보내러 가는 길이다. 생태학적인 측면으로 보면 그가 살았던 25년여 기간은 자연계의 변화처럼, 지역언론이 사회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무던히 애써 왔던 시간이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군사 독재정치가 종식되고 사회 각 분야에서 민주화 운동이 대대적으로 전개됐다. 언론부문에서도 전국 각 지역에서 민주언론 실천을 위한 노력이 이루어졌다. 진실보도를 가로막는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추구했고, 이는 언론노동조합운동으로 발전했다.

다른 한 갈래는 제도 개선을 통한 독점적 언론구조(지방신문 1도 1사, 민방 불허)의 해체였다. 언론에 대한 정권의 관리 통제를 위해 신문 창간을 제한했던 것이 풀리면서 신생 언론사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신생 언론사의 난립은 지역의 한정된 시장을 차지하기 위한 무한 생존경쟁으로 이어졌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언론 독점의 해체가 오히려 언론자본의 입지를 강화시켰다. 언론종사자들은 열악한 처우 속에서 무한경쟁에 내몰리는 악순환 구조 속의 일원으로 기능해야만 했다. 최소한의 양식과 자존심을 지키기도 벅찬 현실에서 많은 언론인들이 쓰라린 가슴을 안고 현장을 떠났다.

1988년 필자가 사회 초년병으로 기자생활을 시작한 이래 2004년 언론을 떠날 때까지 16년여 간 현장에서 고통스럽게 싸우고 고민해 왔던 것들이 아직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아니, 나아지기 보다는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는 표현이 더 가까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은 사명감으로 꿋꿋하게 지역언론을 지켜왔다. 하지만 누적된 스트레스와 자존감 상실, 세어진 노동 강도에 많은 이들이 지치고 이내 스러져 갔다. 언론사에 같이 입사했던 동기 중에 둘이나 이미 세상을 떠났다. 연세가 많지 않았던 선배들도 여러분 보내 드려야 했다.

이번에는 후배가 먼저 갔다. 고(故) 남경훈 부국장은 열악한 지역언론 현실 속에서도 스스로를 추스르면서 고집스럽게 외길을 걸었다. 실타래처럼 얽힌 사회현상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풀어내면서 언론의 사명에 충실하려고 무던히 애썼다. 그래서 어느 곳에서나 인정받고, 환영 받았던 정통 기자였다. 약자의 하소연에 가슴 아파하면서 강자에게는 특유의 직설 화법으로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들었던 사람이다. 허허로운 웃음 속에 자신의 고통을 감추고 남에게는 부드러움만 보여주던 사람이다.

이제 그의 짧은 인생은 요동치던 지역 언론 역사의 한 페이지 속에 묻힌다. 그렇지만 동료 기자로서 함께 공유했던 젊은 시절 그의 숱한 고민과 번민, 사람과 사회에 대한 애정, 진실을 향한 사명감과 용기는 보내고 싶지 않다. 오랫동안 가슴이 허허로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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