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행복을 기록하는 사람, 한명철 조각가
<6> 행복을 기록하는 사람, 한명철 조각가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3.05.23 20: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들 충청인의 기록으로 본 시대읽기
일기장에 적힌 소박한 일상 삶의 즐거움을 주다

학창시절 촉망받던 예비 화가에서 예술 향한 '기록의 달인'으로
1년에 1권씩 50년간 모은 문고집·신춘문예·잡지기록 등 수북

사회 주요 뉴스부터 자식 위한 육아일기까지 고스란히 간직
꼼꼼하게 적어뒀던 기억·추억… 한 작가의 행복 메시지로 전달

소박하지만 행복을 기록하는 사람이 있다. 나무인형 조각가 한명철씨다. 지금은 조각가로 예술 활동을 하고 있지만, 학창시절 시인을 꿈 꾼 문학소년이었고, 교내에서 촉망받던 예비 화가였다. 예술에 대한 관심은 50년이 지난 지금, 시민기록자 중에서도 기록의 달인이라 칭해도 좋을 만큼 다양한 기록물을 간직하고 있다.

그의 2층 서재에는 고전이 된 문고집과 검은색 바인더가 수북하다. 1년에 1권씩 스크랩해 모아 둔 것이 50여권이 넘는다. 한해의 기록물인 스크랩은 전국 일간지의 신춘문예를 시작으로 그해에 이슈가 되었던 신문기사, 잡지 등의 기록이 가지런히 꽂혀 있다.

또 중학교때부터 쓰기 시작한 수십권의 일기에는 지금까지 살아온 그날 그날의 기록을 담아 개인의 역사로 꼼꼼히 적혀있다.

그중 급변하는 세계 정세 속에서 1970년 초 한국의 자화상을 볼 수 있는 기록도 있다. 1971년에는 남·북의 통일 전략이 대립에서 화해 모드로 전환되는데 중요한 분기점이 된 남북적십자회담과 이산가족찾기 운동을 전개되었다. 

한명철 작가는 1971년 8월 이후 이산가족 찾기가 한창 진행되었던 한국의 분위기와 더불어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느끼는 불안감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남북한 가족 찾기’운동의(대한적십자) 타이틀이 신문마다 휘날린다. 깃발처럼.(1971.8.18)

-연일 남북적십자 회담이 신문의 굵직굵직한 머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저 웅큼한 자식들이 적십자의 이념에 맞도록 진리를 행할까가 의문. 이런 때 일수록 정신 차리고 임해야 할 것이다. 곰은 재주로 재롱을 부릴 줄도 알지만 날카로운 이빨을 잘라버리지는 않으니까.(1971. 9.23)

이처럼 냉전 상태였던 남·북이 이산가족찾기 운동으로 대화의 물꼬를 트면서 정치적인 반향을 일으켰지만, 시민들에게 북한의 존대는 여전히 불안한 실체였음을 엿볼 수 있다. 남·북 대화의 단초가 된 이산가족찾기 운동은 이로부터 10년후 KBS의 이산가족찾기운동 방송으로 눈물과 감동의 대 국민드라마로 펼쳐져 남북 화해와 교류의 장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가 하면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총격전 기록도 보인다.

- 백주 인천에서 서울까지 버스를 탈취 고속도로를 달려와 영등포에서 총격전, 많이 죽고 당했다. 간첩인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은 모양, 모두들 많이 놀랬다.(1971.8.23)

이 사건에 대해 1971년 8월 24일자 경향신문 1면에는 ‘공포에 질린 백주의 서울’, ‘공비다 아니다…정체 파악 못한 채 허둥, 국방부 오락가락’ 등을 기사 제목으로 싣고 있다. 당시 대간첩대책본부는 “무장 공비 21명의 서울 진입을 저지했다”고 발표해 북한 도발로 규정지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실미도에서 훈련받던 북파부대원 24명이 탈출해 군경과 대치 후 자폭한 사건으로 32년이 지난 2003년, 영화 ‘실미도’가 만들어지며 감췄던 진실이 밝혀졌다.

굵직한 사건 외에 아들을 위해 쓴 육아일기도 찾아냈다. 일기장 첫 페이지에 “사랑하는 나의 아들 성결이를 위해 이 일기를 쓴다”고 시작한 글은 “맑고 깨끗하게 굳세고 참되고 용감하게 멋지게 사는 사람이 되라”는 아빠의 바람도 적고 있다.

또 ‘거짓말 같지만 아빠가 휘파람을 불면 너도 입을 모아 흉내를 내고 더러는 휘파람은 아니나 소리가 난다. 너를 앉혀놓고 밥 몇알을 네 입에 밀어 넣거 우유 한 스푼을 넣어주고 있노라니 세상의 평화를 보는 듯 하다,(1978. 1.1)

첫돌, 작년 오늘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났었다. (중략) 일년만에 너는 아주 큰 녀석이 되었고, 엄마 아빠도 보기가 힘든 거친 사내아이가 되어버렸다. 몸무게가 10kg의 아이다.(1978.3.19)’와 같은 육아일기에선 진한 부정도 느껴진다.

한 작가의 일상 기록 외에도 관심 있는 분야의 기록도 쌓여있다. 여행 후 정리해 놓은 여행스크랩북, 인물 스크랩북 등 문학과 미술, 역사에 이르기까지 기록의 양과 변화상은 놀라울 정도다.

한 작가는 “중학교 때 독서와 그림을 좋아해 좋은 글귀는 꼭 메모해 두는 습관이 있었다”며 “글쓰는 습관이 일상의 즐거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또 “40년간 매년 1권씩 만든 스크랩은 주로 문학과 역사 미술에 관한 것들”이라며 “역사는 지방역사를 스크랩해 지역민들의 삶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살펴보는데 이것이 내가 살고 있는 곳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즐거움이다”고 들려줬다.

인생의 에피소드로 “언젠가 돈 문제로 법정 소송이 있었는데 판사가 증빙서류를 3년 치를 제출하라고 해 그동안 쓴 일기장을 3년치 제출했다”는 그는 “판사가 일기장을 보고 그자리에서 무효판결을 내렸다. 기록이 판결을 이겼다”고 회상했다.

“메모하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지 못한다”는 한 작가에게 하루 하루는 기록이다. 늘 뭔가 보고 듣고 메모한다. 요즘은 일기장에 꽃을 그려 넣는다.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했음을 기억하는 기호가 바로 꽃이다.

“좋은 일이 있었던 날은 일기장에 꽃그림을 그려 기억하는데 어느날부터는 많은 꽃을 달력에 그리기 위해 즐거운 일을 만들게 되었다”면서 “기록을 보면 내 혼자의 세계에 평생 빠져 살았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환하게 웃었다.

기억이 쟁여있는 묵은 기록물을 펼칠 때마다 한 작가의 얼굴에는 미소가 피어났다. 작은 것에 감사하고, 내 삶의 즐거움을 기록과 함께 나누는 모습이다. 기록물 속에 담긴 많고 다양한 이야기도 놀랍지만 기록을 즐길 줄 아는 소박한 한 작가의 마음이 더 위대하게 느껴졌다. ‘뻔하게 살지 말자’가 인생 좌표라는 한명철 작가. 시간이라는 원료 속에 녹아난 그의 기억과 추억이 행복으로 전달되어 온다.

◇ 기록

-경복궁 현대미술관에서 현대 불란서 거장 화가들이 명화 60점으로 전람회를 열고 있다는데. 볼수 있으면 좋으련만 앉아서 200만원(파리왕복 경비)를 벌게 되었다고 벌써 대여섯번씩이나 들락거린 사람들도 있댄다.(1971.8.29)

-여자 농구 72:62로 큐바에 패배. 최하위에 머물게 되었다는 건 통곡할 일. 신문을 보는 사람마다 모두 군인들이지만 분해서 욕지걸이를 막 쏟아낸다. 또 한번 약한데 약한 취약점을 보여준 예. 그나름대로 변명의 여지가 있겠지만 기대를 싹뚝. 그것도 쪼오다 같은 큐바녀석들에게,(19 71.5.29)

-7대 대통령 취임식. 소련 우주비행사 3명 사망’이란 제목이 신문마다. 헤치를 열자 그 속에 이미 숨진 그들을 발견했다는. 무모한 경쟁과 과시가 빚은 슬픈일(19 71.7.1)

◇ 한명철씨(65)

충북 괴산 칠성 출생. 30여 년간 은행에 근무하고 퇴직하고 현재 고향에 살고 있다. 중학교 시절부터 일기 쓰기를 좋아했던 문학소년으로, 지난 40년간 문학과 미술, 역사에 관한 관심이 많아 그해 소개된 기록들을 모아 스크랩북을 만든 것이 50여권에 이른다. 특히 다양한 기록을 주제별로 정리해 보관하고 있고, 기록의 시간만큼 나무에 새 생명을 불어넣으며 나무인형 조각가로 활동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