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과 ‘와락’사이
‘툭’과 ‘와락’사이
  • 오창근 <칼럼니스트·충북참여연대 사회문화팀장>
  • 승인 2013.05.15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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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오창근 <칼럼니스트·충북참여연대 사회문화팀장>

허리 부위를 ‘툭’ 치며 “앞으로 잘해, 미국에서 성공해”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기자회견을 통해 성추행사실을 부인하며 단순한 터치 수준으로 성추행 의도가 전혀 없었음을 항변하며 한 말이다.

반면에 신고 당시 피해여성은 “허락 없이 엉덩이를 ‘움켜쥐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격려차원의 가벼운 신체 접촉이 아닌 노골적인 성추행 사건으로 실체적 진실을 향에 점점 다가가고 있다.

국민의 공분과 법적인 책임을 넘어 희대의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 자명해졌다.

대통령의 국외순방에서 그것도 대변인 자신이 쓴 칼럼에서 “대변인은 청와대의 입이 아니라 얼굴이다”고까지 말했던 것을 상기하면 이번 행태는 어떠한 변명도 용인될 수 없는 문제이므로 새삼 거론할 여지와 필요성도 못 느낀다.

그런데 이러한 사건이 만약 한국에서 일어났다면 현재와 같은 파문이 일어났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청와대 대변인이라는 권력의 핵심인물이 엉덩이를 만졌다고 곧바로 경찰에 신고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피해 여성이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 이민 가 그곳에서 성장한 교포 1.5세대였기에 대통령이 공식 일정이 남아있는 와중에도 대변인을 경찰에 신고할 용기를 갖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잘못된 일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책임을 묻는 피해여성의 행동은 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러한 용기를 부러워할 수밖에 없는 우리 현실이 안타깝다.

최근 사회문제화 된 남양유업의 밀어내기 식 판매와 대기업 임원이 항공사 여승무원을 폭행한 사건처럼 갑과 을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불공정과 차별은 한국에서는 늘 상 일어나고 있다.

이와 같은 사건이 국내에서 일어났다면 스무 살 남�!� 인턴이 청와대 대변인을 신고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하다못해 ‘구청장 비서실장과 잘 아는 사이’임을 내세워 공무원이 주차단속원에게 정규직 전환을 시켜주겠다며 뇌물을 받고, 그것도 모자라 4차례에 걸쳐 성 상납을 받았다는 기사내용을 상기하면 인턴여성의 행동의 이면에는 여성의 성적 대상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교육이 우리보다 월등히 잘 되어 있다고 봐야한다.

취업, 재계약, 정규직 전환 등을 미끼로 갑의 위치에서 여성을 농락하는 일이 현실에서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대부분의 피해 여성이 인사와 관련한 불이익을 우려해 덮고 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는 교육계라고 해서 비켜갈 수 없다. 최근 들어 비정규직 채용면접에 가슴 사이즈를 묻고, 회식자리 등에서 성희롱 발언을 한 교장이 직위 해제된 사건이 일어났다. 이러한 현실을 생각하면 대통령 순방길에서 벌어졌기 때문에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킨 것이지, 장소와 대상만 다를 뿐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약자에 대해선 자신의 권위를 이용해 무자비하게 짓밟아 버리는 잔인함을 갖고 있다.

이는 가부장적 남성중심의 문화와 왜곡된 여흥, 향락문화가 여성의 인격, 감정을 무시하고 성적 대상으로 인식하는 시각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문제 제기와 항변은 불이익과 자신만이 손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웬만한 굳은 심지를 갖지 않고는 공론화하기가 쉽지 않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문제를 제기한 사람에게 ‘별것도 아닌 일인데 공론화해서 단체나 회사의 이미지를 실추시킨다’는 비난을 서슴지 않는 주변의 인식이다. 특히, 음주 상태에서의 실수에 대해 관대한 문화 또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툭’ 인턴 여성의 허리를 쳤다는 그의 말 한마디에, 청와대의 위기관리 능력과 방미 성과가 다 묻혔다는 비판과 국격을 세우지 않고 쓸데없는(?) 것만 세우고 왔다는 비판 이전에 우리 사회 안에서 곪고 썩은 약자에 대한 강압과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문제를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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