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꽃에 너를 보며
제비꽃에 너를 보며
  • 연규민 <칼럼니스트>
  • 승인 2013.05.14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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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연규민 <칼럼니스트>

지난 해 보도블럭 틈에서 자라고 있는 흰제비꽃을 캐서 도서관 화분에 심었더니 이제 막 꽃을 피운다. 작은 제비꽃 하나는 척박한 곳에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고 있다. 작은 꽃은 허리를 숙이고 자세히 보아야 아름답다. 오래보아야 사랑스럽다. 시인의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

제비꽃을 보다 문득 오래된 책 한권이 눈에 들어온다.

1988년에 나온 『제비꽃에 너를 보며 -한 지성인의 내면적 자기성찰의 소리』이다. 착잡한 마음에 이 책을 다시 뽑아 읽었다.

일전 청와대 대변인이 대통령의 미국방문 기간 중에 자신을 돕던 대사관 인턴을 추행하고 미국 경찰의 수사를 받게 되자 순방일정이 진행 중인데도 한국으로 도주했다.

그전에는 남양유업 한 직원이 나이가 많은 대리점 사장에게 전화로 욕설을 한 사실이 밝혀져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대기업의 횡포가 극에 달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연이어 대기업 공장에서 유독물질이 흘러나와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고 환경을 훼손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자세히 오래 제비꽃을 바라보며 다시 생각해 보자. 정말 잘 사는 게 무언가? 우리는 이미 인명이 무엇보다 귀하다는 사실도 잊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많은 돈을 벌어야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회 속에서는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 경제를 살릴 것 같은 대통령이 결코 경제를 살리지 못했다.

투표하는 행위도 우리의 마음 속 생각이 흐려졌기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했다. 온 국민이 마음의 거울을 닦는 일에 나서야 하지 않을까?

탈도 많고 말도 많은 미국에 관한 생각부터 정리해 보자. 이 책은 명쾌하게 미국을 정의한다. 미국은 한낱 우리에게 외국에 불과한 존재는 아니다. 우리 구석구석에 그들의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우리 민족의 발전에 미국은 악마적인 속성을 언제든 드러낼 수 있는 존재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악마적인 존재만도 아니다. 미국은 자신의 논리에 따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나라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미국은 악마도 아니며 더더구나 천사도 아니다. 불가피하게 우리는 미국과 마주쳐야 하는 운명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냉정하게 보고 우리의 삶을 행복으로 이끄는 길을 찾아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을 뿐이다.

우리 삶이 비뚤어진 데는 교육문제가 중심에 있다. 한 중학교 이야기 속에서 우리 교육문제를 생각해 보자. 명문이라고 하는 이 중학교는 세 가지를 자랑한다. 첫째, 이 학교는 학급 게시판에 “우리 반의 명예를 더럽힌 사람들(50-70등)” 명단이 “우리 반의 명예를 빛낸 사람들(1-20등)” 명단과 나란히 게시된단다. 둘째, 방학에는 1천장의 연습장을 채워야 하며 중간 중간 소집일에 등교해서 증거물을 제출해야 한다. 셋째, 시험은 일요일이나 공휴일에 실시한다. 해이한 마음을 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란다. 이 학교 학생들의 삶은 어떨까? 일체의 정신적 여유를 박탈당한 학생들은 가정생활을 빼앗기고 영혼을 파괴당한다. 몇몇의 성공을 위해 많은 학생들이 피라미드의 밑돌 역할을 한다. 여럿이 함께 가는 교육이라야 나라를 든든하게 하고 국민들을 행복하게 한다는 생각을 이 교육현장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이 책은 차분히 잘사는 게 무엇인지 되새기고 있다.

우리는 예로부터 비록 잘 입고 잘 먹지는 못해도 옳고 바르게 사는 것이 세상을 잘 사는 것이라고 배웠다. 그렇게 사는 것을 자랑으로 삼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옳고 바르고 정직하게 사는 것은 세상을 바보처럼 잘 못사는 것이고, 썩었어도 좋으니 잘만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우리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다. 급기야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자는 노래까지 보급되기에 이르렀다. 20대 연쇄살인범이 자기도 한번 멋지게 떵떵거리고 남부럽지 않게 “잘살아보려고 했다”고 해서 국민들이 경악한 일이 있다.

청와대 대변인 추행도주사건을 궤변으로 변명하고 이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종북세력의 음모라고 하고 피해자의 사진을 돌려보는 패악질을 자행하고 있다. 이게 보수주의는 아니다. 여기서 정신차리지 못하면 우리 사회는 희망마저 잃게 된다. 제비꽃 보기가 너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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