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그동안 못다부른 어머니, 가슴 터지도록 불러봅니다
<4> 그동안 못다부른 어머니, 가슴 터지도록 불러봅니다
  • 김홍은 <산림학 박사·전충북대 교수>
  • 승인 2013.05.14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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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보금자리 가족을 찾자
살구꽃 어머니

김홍은 <산림학 박사·전충북대 교수>

가족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 살기가 팍팍해도 가족이 있어 힘을 내고, 가족이 있기에 인생의 파고도 헤쳐나갈 수 있다. 그러나 가정폭력, 노인학대, 이혼 등 각종 사회 문제가 야기되면서 가족이라는 따뜻한 '보금자리'가 실종되고 있다. 이에 충청타임즈는 지역 작가들과 독자들이 외치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겨 보는 기회를 마련했다.

어머니. 이렇게 부르면 누군들 그립지 않은 부모가 있을까만, 나만은 그렇지가 않다. 어머니는 50여 년 전에 ‘문둥이 촌’으로 팔려 가셨다는 풍문이 마을에 나 돌은 이후로 지금까지 소식이 없다.

아버지는 6.25의 여름 피난길에 총에 맞아 세상을 뜨셨고, 다섯 살 된 여동생은 겨울 피난에 장질부사(장티푸스)를 앓다가 애석하게도 눈을 감고 말았다. 새파랗게 젊은 어머니는 그 해 봄, 유복자로 딸을 낳았다.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된 어머니. 나는 산다는 게 무엇인지는 잘 몰랐지만, 어머니는 추운 겨울에 땔나무를 해 나르며 힘이 부칠 적마다 아버지 생각을 하면서 눈물로 세월을 보내셨다.

마을 사람들은 어머니의 애처로운 모습을 보다 못해, 일본으로 징용에 끌려갔다 돌아와 혼자 사는 이웃 마을사람한테 중매를 서 재혼을 하게 했다. 그 후 얼마간은 어머니는 힘든 일을 하지 않아 좋았다. 그러나 즐겁던 마음도 길지는 않았다. 내가 학교에 갔다가 돌아와 보면, 어느 때는 옹기 화로 안에 삼발이가 놓여져 있었다.

그 위 하얀 사기그릇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고, 흰 솜도 함께 담겨있었다. 화로 옆의 방바닥에는 작은 주사기도 있었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사흘이 멀다하고 입다툼이 잦았다. 나는 그때마다 불안한 나날을 보내면서 새 아버지가 싫었고 아버지라 부르지 않았다.

우리는 일 년을 함께 사는 동안 땅도 팔게 되었고, 어머니는 나를 버리고 어디론가 떠나가고 말았다. 내가 학교에 갔다 집에 돌아와 보니 방문은 활짝 열린 채 마루에는 빈 밥상이 덩그마니 자리하고, 깨진 주사기만 방바닥에 나뒹굴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일이지만, 새 아버지는 아편 중독자였다.

이후로 나는 큰집에서 살았다. 어머니가 떠난 그 해 초겨울이었다. 어찌된 일인지 여동생은 이웃 마을 사람의 등에 업혀 큰집으로 돌아왔으나 어머니는 돌아오시지 않았다.

소문에 의하면 새 아버지가 어두운 밤에 어머니를 문둥이한테 몰래 팔아넘기고 자신은 어디론가 도망쳐버렸단다. 그래서 어머니는 문둥이 촌에서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그곳에 잡혀 있다고 했다. 어머니는 아마 그렇게 되셨을 거라고 막연하게 그냥 믿어왔다.

봄이 오면 더욱 어머니가 그리웠다. 어쩌다 호적초본을 떼는 날에는 오랜 날 가슴에 묻고 살아왔던 어머니를 행정적으로나마 이름으로 만나게 된다.

지금까지 행방불명이 되어 있지만, 그때마다 어디선가에 살아 계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직도 사망신고를 낼 수도 없다.

어릴 적에는 재혼을 한 어머니가 미웠고, 중매를 한 마을 사람도, 새 아버지였던 그분도 모두가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차츰 나이가 들면서 인생의 의미를 조금씩 알게 된 이후로는, 이제 모두가 그립고 보고 싶어진다.

지난 어느 봄날, 어머니가 하도 그리워 무작정 집을 나섰다.

눈물과 한숨으로 살아갔을 청주근교의 옛날 문둥이 촌을 찾아가 보았다. 공연히 가슴이 떨려왔다. 지금은 어디로 다 떠나갔는지 폐허가 되어버린 쓰러진 빈집들이 잡초에 묻혀 여기저기 널려 있을 뿐이다.

작은 교실 한 칸의 학교건물은 지붕은 어디로 갔는지 시멘트벽만 남아 있다. 몇 평 남�!� 마당가에는 우거진 망초 속에 여학생의 모습을 석고로 빚어 세운 조각물이 학교의 흔적임을 알릴뿐이다. 한 많은 세월을 이곳에서 살다 어디론가 가셨을 어머니!

사회로부터 천대받던 문둥이들이 살다간 마을이라 그러한지 사방을 둘러보아도 적막함이 감돌았다. 저녁 노을빛이 폐허에 잠겨있는 가슴을 더욱 아리게 하였다.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순간 소리도 없이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내렸다.

인생의 허무한 슬픔이 밀려와 점점 발목은 힘이 빠지고 있었다. 천천히 발길을 옮겼다. 머릿속으로 어머니의 모습과 고향의 추억들이 떠올랐다.

어느 만큼 하염없이 허허로움에 발걸음을 옮겨 갔을 즈음이다. 이곳에는 아직도 사람이 거처하고 있는 집 한 채가 초라하게 남아있었음을 발견했다. 쓸쓸한 낡은 집 앞에는 40여 년은 되었음 직한 살구나무 한 그루가 꽃이 만발하여 봄을 알리고 있다. 울도 담도 없는 집의 쪽마루 끝에는 남루한 옷차림의 할머니가 혼자서 쑥을 다듬고 계셨다.

어머니는 살구꽃을 참으로 좋아하셨다. 순간 꼭 어린 시절의 고향집 앞에 서있는 기분이 들었다. 쑥을 다듬는 노인 곁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옆으로 바라보니 나의 어머니인 듯…. 어머니하고 부르려니 왈칵 목이 메여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눈물이 쏟아져 앞이 보이지 않아 발자국을 더 옮길 수가 없다.

그동안 못다 부른 어머니를 가슴이 터지도록 소리쳐 불렀다. 어머니…. 내 인생의 노을빛 속으로 어머니의 분홍빛 얼굴이 살구꽃잎이 되어 봄바람에 한없이 날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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