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위복’이 되려면
‘전화위복’이 되려면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3.05.13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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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보은·옥천·영동)

소설 삼국지에 나오는 일화다. 오나라 건국의 시조 격인 손견(孫堅)에게 같은 고향 출신인 조무(祖茂)라는 심복 장수가 있었다.

황제와 국정을 농단하던 역적 동탁을 처단하기 위해 출전한 손견이 적에게 야습을 당한다. 전세가 악화돼 주군이 사지로 몰리자 조무는 손견과 투구를 바꿔쓴다. 조무는 손견의 붉은 투구를 쓰고 손견 행세를 하며 적을 따돌리는데는 성공했지만, 자신은 추적한 적장에게 죽임을 당한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하 윤씨)은 대통령의 위기 상황에서 조무처럼 결단을 내렸어야 할 사람이다. 더구나 그는 스스로 위기를 초래하고 섣부른 후속 행동으로 파장을 중폭시킨 장본인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야·여를 불문하고 부정론이 대세인 상황에서도 그를 인수위에 이어 청와대 대변인으로 발탁했다. ‘불통인사’ 비판을 무릎쓴 모험이자 파격이었다. 당연히 윤씨는 ‘성은에 감읍’하고 보은의 각오를 마음 깊이 다지고 다졌어야 했다. 좀 이르고 강도가 세긴 했지만 이미 세간의 예상이 있었던 만큼 그가 초대형 사고를 친 것은 어쩔수 없었다 하더라도 이후 보인 행보는, 그가 기용된 과정까지 감안할 때 낯두껍기 짝이 없다.

첫 외국 순방을 나선 대통령이 다음날 일정이 걱정돼 잠을 못이루는 동안 새벽까지 술집을 전전하고 여학생 인턴을 객실로 불러대느라 잠을 못이룬 그는 대통령이 잠든 미국 땅에 지뢰를 묻어두고 도망치듯 돌아와 발뺌 기자회견을 가졌다.

청와대와도 “정무수석이 귀국을 시켰느니 어쩌니” 치졸한 공방을 벌이며 제 한몸 살리기에 급급했다. 대통령의 방패는커녕 대통령을 벼랑으로 모는 창으로 돌변해 좌충우돌 했다. 윤씨는 국민을 배신할지 언정 대통령을 배신해서는 안될 사람이었다. 혼자 모든 책임을 떠안고 (사실 혼자 저지른 일이지만) 서둘러 국민의 뇌리에서 사라지는 방안을 모색했어야 했다.

반대로 그는 대통령에게 4박6일의 고단한 방미 일정을 소화하고 돌아와 고작 국민을 향한 사과문을 낭독해야 하는 참담한 심경을 안겼다. 코드와 충성심을 1차적 기준으로 한 인사가 불충과 배신으로 귀결된데 대한 자책감도 더불어 안겼을 것이다.

야당은 어제 대통령 사과에 대해 “국민은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대통령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사과문에서 안팎의 반대를 외면하고 윤씨를 기용한 인사권자의 책임은 언급되지 않았다. 걱정되는 대목이지만 곧 있을 청와대 쇄신 인사를 기대해 본다. 새 인사에서 대통령이 고민한 흔적이 보이지 않으면 국민들은 실망을 넘어 좌절할 지도 모른다.

인사 스타일 못지않게 바꿔야 할 것이 참모 운용 방식이다. 대통령이 윤씨의 추태를 25시간만에 보고받았다는 황당한 대목은 유신 말기 청와대 경호실의 ‘심기경호’를 연상시킨다. 대통령이 언짢아 할 보고는 누락시키거나 보류시켜 신변 뿐 아니라 심기까지 보살핀다는 것이 심기경호의 핵심이다. 이 과잉충성은 대통령으로 향하는 정보를 차단시켜 정국에 대한 오판을 불렀고, 결국 정권의 종말을 재촉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대통령의 의중만 살피는 참모들만 거느렸다가는 이번같은 낭패는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참모들 사이에 자유로운 토론과 논쟁의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번 대통령 사과 문구만 해도 그렇다. 청와대 내에서는 “대통령이 인사권자로서 책임을 인정하는 대목을 넣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어야 한다. 쓴소리를 마다않는 포용의 리더십이 전제돼야 한다는 점에서 대통령이 나서서 풀어야 할 문제다. 대통령이 보스 눈치 살피기로만 일관하는 참모들을 가까이 할 수록 국민들은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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