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일곱 남매 키우느라 고운 태깔 다 가신 우리 어머니~
<2> 일곱 남매 키우느라 고운 태깔 다 가신 우리 어머니~
  • 반영호 <시인·음성예총회장>
  • 승인 2013.05.08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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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보금자리 가족을 찾자
어머니와 감자

반영호  <시인·음성예총회장>

묵은 감자에 싹이 났다. 바깥 광에 보관한 반 상자 남짓 되는 감자에 볼록볼록 눈이 나 있고 더러는 그렇게 싹이 나기도 했다. 먹지 못하면 버려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잘라서 텃밭에 심었다.  

눈길만 주었을 뿐 손 간 일도 없는데 어느 날 보니 그렇게 심은 감자 싹이 우긋하게 올라왔다. 성장이 빠른 놈은 더러 꽃이 피기도 했다. 보이지 않는 땅 속에서 알알이 커가고 있을 감자알들을 떠올리니 마음마저 둥글어졌다.

감자는 젖은 밭에서 캐면 금방 썩어버리기 때문에 우기가 되기 전에 캐야 한다. 이렇게 캐낸 감자를 큰 놈은 팍신팍신 분나게 쪄먹고 새끼 감자는 졸여 먹는다. 예나 지금이나 감자는 소중한 먹거리다.  

감자 눈을 칼로 자르던 일이 떠오른다. 아까운 생각에 심어보려고 했지만 조각조각 잘라낼 때마다 마음이 아려왔다. 볕을 받아 퍼렇게 된 감자를 먹을 때의 느낌이다. 깜깜한 땅속에 숨어 살며 떳떳이 내세우지 못하는 일들을 안타까워하는 심정이었다. 누리는 만큼 희생은 뒤따르기 마련이다.

씨앗으로 쓰려니 칼날의 위험을 감수해야만 했다. 눈을 중심으로 온 몸이 생짜로 조각나야만 한다. 조각난 채 땅속에 들어가서 싹이 틀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눈 주위를 자르다 보면 감자는 칼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다는 걸 알게 된다. 주변의 방비를 위한 초계의 눈일 수도 있지만 씨앗 대신으로 땅속에 많은 눈을 감추고 있어야 하는 만큼 당연한 일이다. 여자로서는 약하지만 어머니로서는 누구보다 강한 모습과 흡사했다. 새끼를 위해서는 그렇게밖에 될 수 없는 본능이다.



사과 상자에 보관 중이던

해묵은 감자에 튼 노란 싹

눈튼 곳을 칼로 도려내려니

이미 심이 박혀 칼날은 눈자리를 비껴가고

대신 쭈글쭈글한 몸통을 내주는 모성

마지막까지 칠남매를 걱정하시던 마음같이

질긴 끈 차마 놓지 못하고

안 가슴 다 찔려 가면서도

탯줄 끊지 못하게 저항하며, 끝끝내

눈자리를 보호하는 감자

어머니

우리 어머니

  (졸시- 어머니와 감자)



감자 싹을 보면 일곱 남매를 키우느라 고운 태깔이 다 가신 어머니가 생각났다. 모든 사랑이 그렇지만 어머니의 사랑은 더욱 드러나지 않는다. 사랑은 물속에 잠긴 빙산과 같이, 땅속에 묻혀 있는 감자와 같이 숨겨져 있어도 빛을 발한다. 

드러내는 것도 좋지만 감추고 삭히면 좀 더 진솔한 마음으로 승화되기도 한다. 사랑은 또 단순한 사랑으로 끝나지 않는다. 여름이면 우물가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썩은 감자 항아리에 대한 기억이다. 녹말을 만들기 위해서는 항아리 속에서 며칠을 끓어야만 한다. 그 다음 썩을 대로 썩어서 형상마저 문드러져야 곱고 보드라운 녹말로 침잠된다.  

어머니의 속내도 노상 그렇게 부글거렸다. 때맞춰 감자항아리에 물을 갈아주면서 똑같이 곰삭았을 당신의 가슴을 생각한다. 감자항아리의 물은 어머니가 매일 갈아 주셨지만 어머니의 가슴에 고인 물은 아무도 갈아주지 않았다. 그런 중에도 참고 견디는 인내를 감수하며 조용히 가라앉으면서 곡진한 사랑의 이름으로 다가오던 어머니. 해마다 감자 싹이 날 때면 어머니 생각이 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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