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 어찌 나 홀로 컸을까요 세상의 모든 母情에 머리 숙입니다
<1> 내 어찌 나 홀로 컸을까요 세상의 모든 母情에 머리 숙입니다
  • 윤승범 <시인>
  • 승인 2013.05.07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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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보금자리 가족을 찾자

가족이 모여 공동체가 되고 또 그것이 모여 국가가 된다. 그래서 가족은 한 나라의 건강지표가 된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의 가족 지표가 붕괴되고 있다. 가정폭력, 노인학대, 이혼 등 각종 사회 문제가 야기되면서 따뜻한 ‘보금자리’가 실종되고 있는 것이다. 가족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 살기가 팍팍해도 가족이 있어 힘을 내고, 가족이 있기에 인생의 파고도 헤쳐나갈 수 있다.

이에 충청타임즈는 가정의 달을 맞아 효를 통해 붕괴된 가정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취지에서 <따뜻한 ‘보금자리’가족을 찾자>는 주제로 ‘아! 어머니’라는 기획시리즈를 마련했다. 지역 작가들과 독자들이 외치는 내 어머니와 아버지를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겨 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달말까지 매일 한편씩 게재해 독자들과 심금(心琴)을 나눈다.

어머니 콩을 터신다

윤승범 <시인>

엄마는 과수원 빈터를 얻어 콩을 심으셨다 가을이면 콩 털러 가신다 ‘배나무 아래 똘배가 떨어져 있어요’ 먹고 싶어 자꾸 보채도 ‘줍지 말아라 남의 것에 손 대는 것 아니다’ 배는 고픈데 목은 마른데 엄마는 아직 당당 멀은 콩밭에서 일어날 기색이 없다 콩잎을 따서 뒤보러 간다 콩잎으로 닦은 엉덩이가 깔깔하다 엄마 등 뒤로 마른 콩알이 튄다 작은 손으로 주워 담는다 집에는 언제 가려나 석양은 바알갛게 깔려 산길은 어둑한데, 콩깍지 훑는 손길은 바빠지는데, 해는 꼴딱 넘어가는데 어두워지는 산길을 내려 간다 내 손엔 빈 점심 그릇이 들려 있고 엄마 머리엔 콩단이 얹혀 있다 ‘어여 가자 가서 밥 해 먹자’ 마을에 닿는다 다른 집 굴뚝엔 벌써 연기가 솟는다 아버진 자전거 빵구를 떼우며 종일 마신 술에 취해 주막집 기둥을 잡고 헤롱헤롱, 엄마는 아궁이에 콩깍지를 넣는다 매캐하고 구수한 탄 내가 난다 보리쌀 삶고 정부미 얹어 밥을 앉힌다 나는 문지방에서 목만 내밀고 겉보리를 씹는다 오래 씹으면 그것도 달다 아버지 오면 술주정 하겠지 또 싸우겠지 생각을 하면 보리밥 후딱 먹고 현자네 집에 텔레비전 보러 간다 레스링 끝나기 전에 싸움이 그쳤으면, 그 전에 형이나 누나가 왔으면, 차라리 아버지가 더 취해 잠들어 버렸으면 싶어, 밤 늦어 살금살금 문틈으로 들여다보면 아버진 없고 엄마는 뜨개질을 하고 계신다. 엄마의 머리 위에 흐릿한 삼십촉 불빛, 어두운 유년.

                                                               (졸시 - 어머니 콩을 터신다)

◇ 후기

그런 유년이 지나고 몇 년 뒤에 어머니께서는 병을 얻으셨지요. 없는 형편에 수술을 하자면 전재산이었던 허름한 판잣집을 팔아 넘겨야 하니까 어머니는 수술을 포기 하셨습니다. 의욕은 있으나 능력을 잃은 아버지는 멀뚱히 술만 마시며 알콜 중독자 흉내를 내고 있었고 나이 어린 누이가 이리저리 뛰어다녔지만 할 수 있는게 없었지요.

멀지 않은 친척들도 어린 것들만 남을 미래 없는 집안이니 도움을 줄 염도 줄 마음도 없었겠지요. 죽음의 고통이 심하지 않을 때는 ‘나 죽고나면 애들 데리고 잘 살아라’라고 하시다가도 고통이 심해지면 ‘아이고, 내가 살아나면 다 벌어 줄테니까 집 다 팔아서 제발 나 좀 살려다구’를 반복하셨던 어머니의 나이가 그 때 겨우 마흔 다섯.

그러던 어느 새벽, 아픈 어머니의 젖가슴은 못 만지고 엄지 발가락을 만지며 발치에서 자던 막내를 보고 온 다음날, 날카로운 햇살이 내려 쬐는 7월 늙은 친정 어머니를 두고 어린 자식들을 남기고 그렇게 세상을 뜨셨습니다. 어머니를 산에 묻고 온 뒤 주정뱅이 아버지도 시나브로 세상을 버렸습니다.

버려진 제비 새끼처럼 남은 동생들을 거둔 두 번째 어머니가 ‘누이’였습니다. 먹이를 달라고 제 머리통보다 크게 입을 벌리는 것들만 있는 동생들을 보살피기 위해 누이가 겪은 풍상을 쓰자면 그 또한 한도 끝도 없을 것임이 자명하겠지요. 남 다 겪는 세월이 흐르고 잊혀져 이제 내가 어머니 임종 때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콩밭에 버려진 콩알을 하나씩 줍던 아이가 싹을 틔우고 잎을 키우고 이만큼 자라기까지 내게는 두 분의 어머니가 계셨던 셈입니다.

아득한 옛 이야기였습니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느 곳에선가 버려진 콩알 하나를 곱게 거두는 마음, 그것을 다독여 심는 마음을 갖는 것이겠거니 생각합니다.

내 어찌 나 홀로 컸을까요. 나를 키워준 세상의 모든 모정(母情)에 머리 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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