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운하와 권은희
황운하와 권은희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3.04.22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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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보은·옥천·영동)

경찰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황운하’라는 이름 석자를 기억할 것이다.

경찰대 1기 출신으로 현재 경무관이다. 경찰청 수사기획관으로 있다가 얼마전 경찰수사연수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동료 경찰들은 그를‘저격수’라고 부른다. 수사권 독립의 선봉장을 맡아 사사건건 검찰과 대립하고 경찰 수뇌부와 마찰을 빚었기 때문이다.

일선서 형사과장이던 1999년 검찰에 파견된 소속 경찰관들에게 복귀명령을 내려 눈길을 끌기 시작했다. 경찰이 검찰에 파견돼 수사를 지원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였다.

대전 중부서장이던 2006년 경찰 내부통신망을 통해 “수사권 독립에 미온적”이라며 경찰 지휘부를 비판했다가 경찰종합학교 총무과장으로 좌천됐다.

2007년에는 한화그룹 총수의 보복폭행 사건 수사 과정에서 수사축소 의혹이 제기되자 당시 경찰청장의 사퇴를 촉구했다가 감봉 3개월을 받았다.

그의 시도들은 구체적 결실로 이어지지 못했지만 조직 내부에 끊임없이 각성과 쇄신을 독려하는 기제로 작동했다.

소신이 서면 돌직구를 마다않는 그는 검찰과 상관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존재였지만, 많은 동료와 국민들에게는 경찰의 미래로 꼽혔다.  

권은희 서울 송파서 수사과장이 제2의 황운하 감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수서서 수사과장으로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을 수사했던 인물이다.

그는 그제 당시 경찰 수뇌부의 축소·은폐 지시가 있었다고 폭로했다. 여직원의 컴퓨터 분석과정에서 수서서가 의뢰한 78개 키워드를 서울경찰청이 4개로 축소해 조사했다는 것이다.

수시로 수사팀에 전화를 걸어 보도된 기사에 대해 추궁하며 입막음을 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온라인에서는 윗선의 압력을 폭로한 권 과장을 응원하고 신상을 걱정하는 누리꾼들의 글이 쏟아지고 있다.

지휘부와 대립한 그가 황 경무관처럼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까 우려해서 일 것이다. 지휘부가 수사를 농단하고 이를 지적한 아랫사람을 징계로 윽박지르는 전근대적인 기관이 시민들이 보는 경찰의 현주소임이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다.

권 과장은 사법고시 출신으로 2005년 여성 최초로 경정을 달고 경찰에 특채됐다. 법조로 갔어야 할 사람이 경찰에 입문한 셈이다. 부당한 지시로 조직을 만신창이로 만든 지휘부를 용기있게 비판한 인물이 비정통 여성 경찰이라는 점은 경찰로서는 부끄러워해야 할 대목이다.

‘국정원 댓글녀’ 사건 수사결과가 발표된 후 경찰의 위상이 곤두박질 하고있다.

‘댓글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지난해 대선 직전의 중간 수사결과 발표를 스스로 뒤집은 것 만으로도 경찰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여기에 수사팀 압력 의혹까지 터지며 “수사권 독립을 말할 자격이 있느냐”는 뼈아픈 비판까지 쏟아지고 있다.

경찰은 지난해 대선 3일전, 그것도 후보들이 방송토론회를 마친 한밤중에 서둘러 무혐의를 골자로 한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부실 조사가 사실로 드러났으니 경찰은 의도적으로 선거에 개입한 것이 된다. 이런 경찰이 다른 기관의 비슷한 혐의에 선거법을 들이댈 염치까지는 없었던 모양인지 ‘정치에만 간여했지 선거에 개입한 것은 아니다’는 궁색한 논리를 달아 검찰에 사건을 인계했다.

사실 황운하나 권은희 같은 구성원이 등장하는 자체가 경찰의 비극이다.

조직을 수렁에 빠트린 경찰 수뇌부는 권 과장의 소신발언을 대오각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수사개입 여부를 철저히 밝히고 엄중하게 책임을 묻는 것이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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