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억하기 위해 기록한다
<1> 기억하기 위해 기록한다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3.04.11 1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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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기억하는 사람들 충청인의 기록으로 본 시대읽기
역사속 치열하게 살아온 민초들의 삶을 엿보다

선사시대 흔적·그림에서
오랜 시간 숙성 과정 거쳐 문자로 발달

문자사용 삼국시대부터 생활속에 정착
민간인 기록 통해 기록문화 중점 연재

개인 기록물 보유한 충청인 15명 찾아
생생한 시대풍경 이야기로 구성

 

현존하는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 ‘직지’의 고장 청주는 인쇄문화 발상지로써 기록문화 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직지’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된 관계로 기록문화 도시로서의 지역을 알리는데 미흡한 점이 있는 게 사실이다.

이에 기획 취재‘역사를 기억하는 사람들; 충청인의 기록으로 본 시대읽기’에서는 이 땅의 사람들이 오랫동안 기록한 일기나 편지, 사진, 영수증, 상장 등 다양한 사료들을 찾아 조명함으로써 기록문화와 정신문화의 뿌리를 잇고자 한다. ‘역사는 기록이다’는 전제 속에 같은 시·공간을 살아온 시민들의 삶의 흔적을 18회에 걸쳐 연재한다.

 인간이 살았던 시대를 구분할 때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로 나눈다. 선사시대가 신화적 관점이라면 역사시대는 기록을 관점으로 한다. 하지만 기록은 그 출발점부터가 미약하다. 낙서와도 같은 그림 기록이 문자라는 장대한 기록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라는 숙성의 과정을 거쳐 발달했다. 지구가 탄생되고, 무수히 많은 인류가 이 땅에 살다갔지만 이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남긴 흔적들이다. 현대인들이 지각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방식의 기록일 수 있지만 그들의 흔적은 역사로 기억되고 있다.

‘역사는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이미 역사가 아니다. 이미 지나간 역사라도 후세에 의해 발굴되고, 재평가 된다면 이또한 새로운 역사가 될 수 있다’는 말처럼, 기원전 1만 5천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알타미라 동굴벽화나 기원전 1천년 것으로 보여지는 울주의 반구대 암각화 등에서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의 깊이를 읽어낼 수 있는 것도 기록이라는 흔적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역사의 화살은 늘 미래를 향하고 있듯이, 기록은 문명의 발달로 더 풍성해졌다. 우리나라 기록은 한자가 도입되면서 국가적인 중요사업으로 기록물들이 만들어진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림과 문자 중심 기록도 다양해졌고 사진과 문서, 영상, 구술 등으로 확대돼 후손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기록의 시작은 문자가 생활 속에 정착된 삼국시대라 할 수 있다. 이 당시 대표 기록물로는 고구려의 <신집〉, 백제의 〈서기〉, 신라의 〈국사〉등과 광개토왕릉비·진흥왕순수비와 같은 비문을 들 수 있다. 특히 이 시기는 한문을 읽고 쓸 수 있는 지식층이 기록에 참여하면서 국가적인 기록만이 아닌 개인적인 체험과 견문을 담은 기록이 등장한다.


이후 과거제가 정착된 고려시대에는 공적인 기록과 사적인 기록의 차이가 뚜렷하게 인식되면서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역사서술과 문인의 개인적인 기록이 분명히 구분되었다.

조선시대는 기록문화를 꽃 피며 양적·질적으로 크게 발전한다. 특히 임진난과 병자난을 겪으면서 기록물이 양적으로 크게 증가하는데, 왕이나 권력층, 지식층에 한했던 기록들이 여러 계층의 사람들에 의해 생생하고 다양하게 기록되었다.

조선의 눈부신 기록물 중 훈민정음과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실록, 직지심체요절, 해인사 대장경판 및 제경판, 일성록, 조선의궤, 동의보감, 5.18기록물 등 9가지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국민들에게 자긍심을 주고 있다.

이처럼 기록물과 기록이 생산되는 과정은 그 사회를 반영한다. 당시 그 사회가 어떤 사회였는가를 알기 위해선 기록이 가장 중요한 자료가 된다. 하지만 이 같은 역대의 기록들은 왕이나 권력자들 중심의 지배층 기록이 대부분이다. 민초들의 삶은 기록에서 제외된 채 역사의 변방에 남아있다.

이번 기획취재에선 그동안의 시선을 뒤집어 민간인들의 기록을 통해 시대를 읽어보는 기록문화에 중점을 두고 연재를 시작한다. 충청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의 일상의 기록을 통해 변화의 시대를 살아간 평범한 시민들의 삶의 현장과 개인의 기억 속에 정국인식은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가를 되짚어 새로운 기록의 역사로 잇고자 한다.

취재 대상은 개인 기록물(일기나 개인 사료)을 가지고 있는 충청지역의 15인이며, 취재 내용은 이들의 기록물을 개인별로 15가지 이야기로 구성한다. 기록물은 개인의 일상 속에 담긴 마을의 역사, 공무원으로 재직하며 하루의 업무를 기록한 일지 등 소중한 일상의 기록들이다.

비록, 일상의 기록으로 본 소시민들의 시대 기억은 역사적 관점에서 개인의 한계를 드러내지만, 치열하게 살아온 그들의 삶에 가치를 부여하고 생생한 시대풍경을 담을 계획이다.

또한, 역사를 기억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기록이 몇 세기 후에는 우리 고장의, 나라의 역사를 고찰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음을 부각시켜 직지의 고장 청주, 기록문화유산의 도시 충청의 시대정신을 보여주고자 한다.

기록은 개인적인 삶 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자료다. 역사에서 과거와 미래를 볼 수 있고, 과거를 통해 더 나은 미래를 구축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를 위한 시작을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들로부터 출발해 본다.

"지역의 특색 찾아 기록문화 확산 되길"

<인터뷰> 박경국 국가기록원장

기록의 중요성은 국가에서 관리되어온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춘추관이라하여 시정을 기록하는 관청을 운영했고, 전국 각지에 서고를 두어 중요 사료들을 보관했다. 이후 일제 강점기와 전쟁으로 인해 단절된 기록의 역사는 1962년 국가기록원을 개원해 맥을 잇고 있다.

특히 기록물 수집과 보존·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체계적으로 기록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국가기록원은 1999년 기록물 관리 법률을 제정한 뒤 2006년부터 개인 기록물에 주목해 수집하고 있다. 민간기록물로는 개인기록물 자료와 마을기록물 자료(기록사랑마을)로 구분해 보존사업을 펼치고 있다.

박경국 국가기록원장은 “국가기록원은 미래의 역사적 자산인 기록을 후대에 남기기 위해 국가기록관리 정책을 총괄하고 주요 국가기록물을 수집·보존관리 하는 대한민국 기록관리의 중추기관”이라며 “2000년부터 개인자료에 주목해 민간단체나 기관,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중요 기록물을 수집해 정보화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 “기록을 중시해왔던 우리나라 기록문화는 일본강점기를 지나며 단절되었고, 6·25전쟁을 겪으면서 많은 자료가 유실되었다”면서 “민간기록물의 경우 영구보존의 가치가 있느냐, 후손들에게 도움이 될 자료인지 심사를 거쳐 기증받고, 기증자에게는 기증벽을 설치해 자긍심을 심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기록은 단지 문자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주제가 있는 기록들로 구분해 종이문서·대장류, 시청각물, 간행물, 도면, 지도, 카드, 구술자료, 기록사본, 디지털자료 등까지 확대해 기증받고 있다”면서 “시민들의 기록물은 여러 계층의 삶을 통해 다양한 시대상을 조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생활 기록의 가치와 의미가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역 언론에서 시민 기록물을 찾는 일은 지역의 역사를 풍부하게 하는 의미있는 일이다. 지역의 기록물을 다각화해 발굴함으로써 중앙이 아닌 지방의 특색을 찾고 이를 통해 기록문화가 확산되길 바란다”면서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부단한 대화인 만큼 시민들의 기록을 통해 근·현대의 새로운 시대상과 만나길 바란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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