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울지 마세요돌아갈 곳이 있겠지요
당신이라고
돌아갈 곳이 없겠어요
구멍 숭숭 뚫린
담벼락을 더듬으며
몰래 울고 있는 당신, 머리채 잡힌 야자수처럼
엉엉 울고 있는 당신
섬 속에 숨은 당신
섬 밖으로 떠도는 당신
울지 마세요
가도 가도 서쪽인 당신
당신이라고
돌아갈 곳이 없겠어요
'가도 가도 서쪽인 당신'(세계사) 중에서
<김병기 시인의 감상노트>
섬에 갇힌 사람이 울고 있다. 가도 가도 서쪽으로 몸이 기우는 서귀포다. 다석(多夕)선생은 '서녘'을 '지'로 말씀하셨다. 그래서 '지다'라는 말이 나왔다는 말을 건져본다. 늘 슬픔이 고여 뺨으로 뜨거운 눈물이 흐르는 곳이다. 아직도 자신의 죽음이 믿기지 않아 잠들지 못하는 만(萬)을 넘는 4·3 유령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가야할 곳이 정해진 사람들. 섬 속에 있어도 섬 밖으로 떠도는 당신이여, 그래도 갈 곳이 없겠는가 '지는 꽃'이 아주 진다면 얼마나 서러운 것이냐. 그렇지만 동토(凍土)의 한철이 지나면 다시 꽃으로 피는 걸 어이 막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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