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음식과 공예
전통음식과 공예
  • 정규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비엔날레부장>
  • 승인 2013.03.21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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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규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비엔날레부장>

안동을 중심으로 하는 경북 북부지방의 전통 음식 가운데 헛제사밥이 있다.

헛제사밥은 말 그대로 가짜 제사밥을 말하는데, 그 음식의 유래에는 우리 옛 여인네의 가슴 쓰라린 애환이 담겨 있다.

전해 오는 헛제사밥에 대한 이야기 가운데 밤 늦도록 학업에 정진하는 유생들이 늦은 밤 허기진 속을 달래기 위해 밤참으로 삼았다는 것이 가장 널리 회자되고 있다.

양반과 성리학자들이 유난히 많았던 지역적 연고로 연중 제사가 끊이지 않았던 안동지방에서는 제사를 마친 뒤 젯상에 올렸던 음식들을 골고루 섞어 비빔밥처럼 먹는 늦은 밤의 식습관이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다.

그런 밤참은 온종일 책상머리에 앉아 책을 파야 하는 유생들에겐 매우 유용한 에너지원이 됐을 터.

그러나 아무리 많은 제사를 모신다 해도 일년 365일 동안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제사가 계속될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맛있는 제사법이 먹고 싶은 유생들의 꾀가 거짓 제사밥을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헛제사밥은 그러나 이같은 젊은 유생들의 낭만적인 속달래기 외에도 종가의 명예와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무던 애를 썼던 종부의 애환도 깃들어 있다.

외세의 침략을 유난히도 많이 받아 왔던 우리 민족은 전쟁이 있을 때마다 남정네들이 신분을 가리지 않고 나서 나라를 지켜 왔다. 그 때 홀로 남은 아녀자들 가운데 특히 양반댁 며느리들이 헛제사밥을 팔아 연명하며 종가를 지키는 숭고한 희생을 치렀다는 유래는 지금 들어도 가슴이 서늘하다.

종갓집 종부들은 여전히 제사 음식을 다른 이들의 손에 함부로 맡기지 않는다. 전쟁터로 나간 뒤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대신해 가문을 지키면서 모진 삶을 이어가야 했던 종부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겨우 제사음식을 만드는 일.

곤궁한 종부들은 생계를 위해 헛제사밥을 만들었고, 늦은 밤 이를 광주리에 이고 골목길을 따라 팔아 왔으며, 이를 어여삐 여긴 살아남은 유생들은 기꺼이 이를 사서 먹는 상생이 있다.

헛제사밥은 또 평화를 함께 나누는 공동체의 표상이기도 했다.

권력과 재력이 공존하던 시절. 명문 대가에서는 제사 음식을 크게 차려 가난한 백성의 주린 배를 채워주는 구휼음식으로의 역할도 맡아왔다.

그런데도 마을에 배곯는 이웃이 여전한 것을 눈치 챈 종손은 제삿날이 아님에도 가짜 제사로 꾸민 뒤 그 음식을 마을사람들에게 고루 나눠 주면서 굶주림의 설움을 달래주는 구실로 삼기도 했다.

고춧가루나 오신채 등 자극이 강한 식재료를 사용하지 않는 제수음식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헛제사밥은 며칠씩 굶어 쇠약해진 주린 배에 자극을 주지 않는 효과도 있다.

이러한 무자극성 영양식은 또 지식강국을 위해 깊은 밤에도 잠 못이루고 형설지공을 세우는 유생들의 건강 유지에도 크게 기여했으니, 말하자면 조상의 음덕이 안팎으로 고스란히 배어있는 음식이라 하겠다.

유림의 고장 안동에 헛제사밥과 같은 전통음식이 있는가 하면 양반고을 청주에도 조상의 슬기가 가득 담긴 <반찬등속>이라는 고유 음식 조리서가 있다.

지금으로 부터 정확히 100년전 씌여진 <반찬등속>은 청주 상신동, 지금의 청주시 흥덕구 강서2동에 살던 주부가 붓글씨로 정성스럽게 필사한 레시피다.

김치류와 짠지류, 반찬류, 떡 종류와 만두, 과자 및 음료 등 46가지 음식을 만드는 방법을 자세하게 적어 놓은 이 책은 근대 한국의 음식문화를 이해하는 동시에 당시의 맛깔스러운 입맛을 가늠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지금 국립청주박물관에서 반찬등속에 담긴 음식을 모형으로 만들어 관람객들에게 선보이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데, 세태의 흐름과 변화에 따라 지금과는 크게 다른 당시 음식의 가짓수와 함께 인공조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을 모습에서 순수함이 담뿍 묻어나고 있다.

문제는 그 음식을 담은 그릇인데, 우리 전통은 각기 다른 음식의 종류에 따라 서로 질감과 기능을 달리하는 그릇을 선택하였으니, 그런 조화로움이 음식과 공예가 서로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그런 전통의 음식이 장인의 숨결과 예술혼이 배어있는 다양한 그릇과 만나 빛나는 식탁의 아름다움으로 승화되는 모습은 오는 9월 11일부터 열리는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전시공간에서 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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