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걷는 만큼만 본다
사람은 걷는 만큼만 본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13.03.20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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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오창근 <칼럼니스트·충북참여연대 사회문화팀장>

요즘 화창한 날씨를 벗삼아 사무실에 차를 놓고 아침저녁으로 걸어서 출퇴근한다.

금천동이 집이니 대성동 우성 아파트를 뒷길로, 향교를 지나 ‘우암산 걷기’ 길을 이용해 우암동 사무실로 온다. 지름길을 찾는다고 헤매다 막다른 골목에 막혀 지각도 가끔 하지만, 이젠 나만의 가장 빠른 길을 찾아 이제 손쉽게 오가고 있다.

호젓한 골목길을 걸으며 ‘사람은 걷는 만큼만 본다’는 화두를 잡고 산다.

걷는다는 것, 온전한 육체의 힘을 바탕으로 한다. 빠름과 더딤을 조절하며 가쁜 숨도 고르고, 담장 너머로 등교를 서두르는 초등학생의 생기발랄한 모습도 본다.

우린 모두 어디론가 가고 있다. 직장으로, 학교로, 혹은 뒷걸음치듯 집으로, 각자의 목적지를 향에 분주하게 움직인다. 동굴을 나와 생존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선사시대의 관습처럼 사회 속으로 들어가다. 자주 보고 자세히 본다. 봄을 맞아 담장 밑에 뾰족이 입술을 내미는 여린 새싹에서 우주를 들어 올리는 자연의 웅대함을 깨닫고, 날 종아리로 걷는 여인의 바쁜 걸음에 만화방창(萬化方暢) 봄의 생기를 느낀다. 들숨과 날숨의 가지런한 호흡으로 생동하는 봄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어느 한 계절 그냥 지나간 적이 없는데 마음 바쁜 내가 늘 놓치고 살며 여운처럼 지난 계절의 뒤통수만 보고 아쉬워하지 않았나 자문한다.

골목길을 내닫는 것처럼 우린 늘 길과 대면한다.

때론 길을 잃고 방황하지만, 절박감과 맞닿은 곳에 늘 길이 있다. 그 길은 사람의 길이다. 상처를 주고, 위안도 주는 길의 끝에는 늘 사람의 길이 있다. 노파의 잔등처럼 굽어진 길 위에서 고뇌의 삶을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은, 길게 이어진 길 끝 어딘가에 있을 거라는 희망을 믿기 때문이다. 굽은 길도, 휘어진 길도 사람의 길이며 직선의 탄탄대로도 밟고 지나야 끝나는 길이다. 안을 살펴 밖을 내려놓는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새로운 길과 마주선다.

현대인들은 교통과 통신으로 인한 생활권의 확대로 유목민처럼 고향을 등지고 직장 찾아 전국 어디든지 정착을 한다. 실향민이 고향을 사무치듯 그리워하는 것은 갈 수 없다는 현실적인 안타까움과 발로 밟고 눈으로 익힌 고샅과 골짜기마다 추억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에게 고향이 의미가 과거보다 퇴색한 것은 자세히 보고 살뜰히 살피는 마음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광속처럼 빠른 시대, 바람처럼 지나가는 속도의 시대에 살고 있어 과거 조상처럼 짚신 신고 산천 구경하며 걷는 느림의 미학을 잃어버렸다.

탯줄 끊은 고향은 병원이 되었고, 찾아가 반길 이는 전화로 인터넷으로 안부를 물을 수 있다.

삶은 걷는 것이다. 그리고 ‘걷는 만큼만 본다.’ 걷는 것은 주위를 둘러보는 넉넉함과 가끔은 걸어온 길로 되짚는 여유를 동반한다.

사람은 본만큼 생각하고, 자세히 본만큼 생각은 정밀하다. 그리고 가끔 멈춰선 곳에서 불현듯 자신을 만날 수도 있다. 걷기 명상을 강조한 베트남의 탁닛한 스님은 “걱정과 불안, 망상에 한눈팔지 말고 마음을 호흡과 발밑에 집중하라, 온전히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라. 온갖 생각과 함께 방황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 은 일에만 집중하라” 고 하며 걷는 가운데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 것을 가르치고 있다.

올 1월에 한 달여에 걸쳐 스페인에 있는 산티아고의 순례자길, 800km를 걷고 온 지인은 힘들어서 중간에 울었다고 하지만 난 그 울음이 육체의 고통 때문만은 아니라고 믿는다. 강요로 걷는 길이 아니기에 자신을 돌아보고 몸 안에 갇혀 있는 영혼의 울림을 분명히 느꼈을 것이다. 길에서 길을 묻고, 새로운 길의 방향을 잡는 질문 앞에 과거 그 길을 갔던 순례자(巡禮者)의 마음을 느꼈으리라. 햇살 좋은 봄날, 천천히 걸으며 고요하지만 늘 분주한 생명의 태동을 느끼며 자신만의 봄맞이 계획을 세워보는 것도 좋지 않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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