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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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06.08.14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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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삿개에서

                                                         김 수 열

그립다, 는 말도
때로는 사치일 때가 있다.
노을구름이 산방산 머리 위에 머물고
가파른 바다
漁火 점점이 피어나고
바람 머금은 소나무
긴 한숨 토해내는 순간
바다끝이 하늘이고
하늘끝이 바다가 되는 지삿개에 서면
그립다, 라는 말도
그야말로 사치일 때가 있다.

가냘픈 털뿌리로
검은 주검처럼 숭숭 구멍 뚫린
바윗돌 거머쥐고
휜 허리로 납작 버티고 선

갯쑥부쟁이 한 무더기!

'바람의 목례'(애지) 중에서

<김병기 시인의 감상노트>

   
제주 서귀포에 가면, 뜨겁게 끓던 사랑이 차갑게 응고되어 서 있다. 지삿개. 사랑을 위하여 제 욕심을 반듯하게 절개하고 오롯이 품위를 지키는 선비의 오랜 사랑 법이다. 어떤 사랑도 흔들리지 않으며, 어떤 아픔도 오래 가지 않으며, 어떤 증오도 녹아버린다. 그래서 그리움의 말도 말랑말랑해진다. 꽃구름이 산방산에 피면 이루지 못할 거 없다는 듯, 바다가 노래를 부른다. 그곳에선 아무리 못난 사랑이라도 숭고한 사랑이 된다. 바다와 하늘이 껴안으며 끝도 없이 가슴으로 밀고나가는 파도가 그것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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